중국 안보고 소련외길의 집념/현대(그룹별 북방전략 점검: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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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수교 확신갖고 자료 수집에 전력/시베리아 「모든 자원」개발이 목표
한국기업의 대 북방진출이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9월말 한소외무장관회담에서의 수교합의 예정,아시안게임이후 한중무역사무소 상호개설전망이 나돌면서 북방정책은 질ㆍ양면에서 한층 구체화될 전망이다. 서울올림픽이후 지난 2년간 북방정책의 진전에는 한국의 경제력,특히 기업들의 노력이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북방정책의 실질적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주요 그룹들의 북방진출동향,앞으로의 전략등을 시리즈로 엮는다.<편집자주>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국내굴지의 기업들이 너도나도 중국투자를 모색하고 있는데도 유독 현대그룹만은 중국쪽에는 눈도 돌리지 않은채 소련행만을 고집하고 있어 새삼 현대의 대 북방전략에 대한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은 최근 공개석상에서 『현대그룹은 한동안 중국과 다른 동구권국가에 대해서는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나서 그같은 궁금증을 한층 부채질하고 있다.
현대는 그동안 대중 투자에 대한 설은 무성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투자는 커녕 투자상담조차 한적이 없다.
정회장 자신도 이번 아시안게임에 86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의 자격으로 방중을 했지만 이전까지는 중국에서 단 하룻밤을 묵은 적이 없고 평양방문시 북경비행장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었을 뿐이다.
이에 반해 소련에 대해서는 서울올림픽직전인 88년 9월의 첫 접촉을 시작으로 정 회장이 직접 다섯번을 방문했고 이명박 현대건설회장등이 두번을 다녀왔다.
그리고 30억평규모의 연해주 원목개발을 비롯,파르티잔스크의 석탄개발,야쿠츠크의 가스전개발을 소련측과 합의해 놓았으며 두곳의 수리조선소에 대한 기술지원과 비누공장ㆍPC공장ㆍ펄프공장(이상 연해주) 및 토볼스크지역의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에 참여키로 하는 등 갖가지 계획을 추진중이어서 중국과 좋은 대조를 보여주고 있다.
현대의 이같은 소련에 대한 외곬의 집념을 경제계 일각에선 『숫자에 근거하지 않은 감의 경영』이라는 비판도 하지만 정회장의 그같은 판단은 장사하는 사람으로서의 철저한 분석에 근거한 것이란 후문이다.
현대측은 정회장이 나름대로 향후 소련의 정치ㆍ경제진전상황에 대한 완벽한 시나리오를 머리속에 짜놓고 있다고 설명한다.
정회장이 소련문제와 관련해 자문을 받는 인사는 국내전문가는 물론이려니와 고르바초프의 핵심경제보좌관 및 미국의 저명한 소련전문가등 상당수에 이르며 입수해 놓은 자료중에는 일본이 20여년전에 철저하게 조사해 놓은 시베리아자원지질 분포도등 웬만해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까지 있다.
정회장이 전망하는 향후 소련정치는 철저한 자치공화국으로의 전환이다. 자치제가 되면 연방정부의 입김이 줄어들고 자치공화국들에 대한 투자가 손쉬울 뿐더러 투자이익의 회수도 용이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중앙정부의 입김이 워낙 강해 넘어야할 산이 너무 많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회장의 마음에 불을 댕긴 것은 한소수교가 곧 되리란 확신이었고 때문에 일찌감치 뛰어들었다.
중국진출을 염두에 안두는 이유도 두나라 사이에 무역사무소가 개설된다해도 정식수교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수교가 안된 나라에 떼 돈을 쏟아붓는 것이 불안한 것이다.
정회장은 지금도 경제계 일각에서 『20여년전 일본이 포기한 시베리아개발을 무엇하러 하느냐』는 지적에 대해 『그것은 일본사람들 입에서부터 나온 얘기』라고 일축해 버리고 있다. 북방도서의 반환이 급선무인 일본이 우리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못마땅해 퍼트린 얘기란 설명이다.
현대는 한소수교가 되는대로 그동안 소련측과 합의해 놓은 사업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시베리아에 묻혀 있는 모든 자원의 개발을 현대의 목표로 삼고 있다.<이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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