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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와 인공기(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모든 경기에는 팬이 있게 마련이다. 단순히 경기를 보고 즐기는 이런 팬들 가운데는 으레 한쪽편을 열심히 응원하는 열성팬이 있다.
프로경기가 많은 요즘은 대부분의 경기에 조직적인 응원단이 동원된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이 응원단의 현란한 응원전이 오히려 경기보다 더 볼만한 구경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응원은 어디까지 선수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 그쳐야지 그 이상 열을 올리다 보면 싸움이 되는 수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유명한 「축구전쟁」이다. 69년 월드컵 축구예선에서 남미의 숙적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맞붙었는데 이 두 팀은 경기가 격렬해지자 선수들끼리 감정이 격해져 그라운드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것이 응원단석으로 비화,급기야는 두 나라의 전쟁으로 발전한 것이다.
결국 이 전쟁은 2천명의 사상자를 내고서야 끝났다.
이같은 견원지간의 싸움은 축구의 라이벌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시합에서도 자주 일어나고,하키경기의 영원한 맞수 인도­파키스탄 시합에서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미국과 소련의 농구경기도 그 격렬함이 마치 총칼없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지난날 우리의 남과 북 스포츠시합도 따지고 보면 불꽃 튀기는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오죽했으면 그것을 「남북대결」이라고 표현했겠는가.
그래서 제3국에서 남북의 시합이 벌어질 때면 으레 그 나라의 매스컴들은 경기보다 양쪽의 「보이지 않는 싸움」을 취재하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곤 했었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와 이른바 「남북대결」의 양상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승부에 집착하여 좋지 않은 매너로 이기기보다는 스포츠정신에 의한 페어플레이가 더욱 값지다는 것을 서로가 인식한 것이다.
그라운드에서 상대편 선수가 몸에 부딪쳐 넘어지면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경기에 이기는 것보다 더욱 마음 흐뭇함을 느끼곤 했다.
또 남과 북이 각기 다른 나라와 경기를 할 때는 서로 열심히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역시 피는 물보다 짙구나』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 결실이 이번 북경아시안게임에서 맺어졌다. 개회식날 양쪽 선수단 입장식에서 보인 태극기와 인공기의 물결,그리고 여자 소프트볼 시합때 양쪽 응원석의 모습은 놀라움과 반가움 바로 그것이었다. 그 화기애애한 모습이 끝까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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