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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시론

한·미 불협화음을 잠재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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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전작권 전환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번 SCM에서 2009년과 2012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서 전환하기로 합의는 했다. 그러나 전환 시기 결정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한.미 국방 당국 간에는 심한 마찰과 갈등이 예상된다. 특히 지난달 30일 버웰 벨 한미연합사령관이 이번 SCM 협의 내용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내년 상반기까지는 전작권 전환 시기가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해 더욱 그렇다. 이 발언은 한반도 안보상황보다는 전작권 이양을 우선시하는 입장으로, 우리 국방 당국의 입장과는 정면으로 상치되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은 안보상황과 무관하게 전작권의 조기 전환을 먼저 요구한 한국 측이 제공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측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사안이 돼서는 안 된다. 동맹국으로서의 상호 신뢰와 협조정신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미 측은 전작권의 조기 전환을 먼저 주장한 한국 측의 자충수(自充手)를 역이용해 전환 시기를 앞당기려고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 측도 바람직한 전환 여건에 대해 보다 솔직하게 미 국방 당국과 대화해야 한다. 특히 한국이 감당해야 할 몫은 감당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핵우산 보장과 관련한 '확장된 억제' 개념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일방적으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 개념에 함축돼 있는 미국 측의 의도를 읽고 대비해야 한다. 이번에 미국 측이 SCM 공동성명에 처음 포함한 '확장된 억제' 개념은 과거 냉전시대의 개념과는 다르다. 냉전시대의 '확장된 억제'는 소련의 핵 위협을 겨냥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탑재유도미사일(SLBM).전략폭격기로 구성되는 '핵 공격력 위주의 삼원체제(triad)'였다. 그러나 2002년 발표된 부시 정부의 '핵태세보고서(NPR)'는 여기에다 '미사일방어(MD) 체제' '재래식 공격력' 등의 새로운 개념을 추가했다. 테러.핵확산 등 냉전 종식 이후의 새로운 국제 안보환경에 적용하기 위한 것이다. '확장된 억제'라는 것은 바로 이 NPR에 입각한 억제 개념으로 봐야 한다. 특히 '핵 공격력' 보다는 재래식 공격력과 MD체제에 비중을 두고 있다. 미국이 일본이나 한국에 MD체제에 적극 참여토록 권유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SCM 공동성명에 '확장된 억제' 개념의 명기를 일방적으로 확대 해석하면서 좋아할 것이 아니라, 대북 억제를 위한 패트리엇 도입 등 MD체제 확보는 우리의 몫이란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앞으로 한국이 이에 따른 자기 몫을 다하지 못하거나 기피한다면 유사시 핵우산이나 군사지원 보장도 그만큼 약화된다고 봐야 한다. 앞으로의 주한 미군은 지금까지의 주한 미군과는 질적으로 달라진다는 점을 정말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결국 전작권 전환, 확장된 억제, 유사시 미국 지원 등은 모두 동맹국으로서의 상호 존중과 신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협조정신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 해결의 관건은 한.미 국방 당국 간 신뢰 회복에 있다.

박용옥 한림국제대학원대 부총장·전 국방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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