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의식 「내각 비능률」 수술/「9ㆍ19」 전격개각 왜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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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집권 후반기 공권력 강화 포석도
9ㆍ19 전격개각은 지난주 한강유역 수해와 관련해 민심수습차원의 문책인사며 아울러 능력위주의 보각 성격을 띠고 있다.
우선 권영각건설장관과 주병덕충북지사를 경질한 것은 수해와 직접 관련지어 사후대처능력을 물은 것이다.
권 전장관은 지난 8월20일 건설부 직제개편에 따른 건설부직원들의 집단항명사태로 이미 반쯤 신용을 잃고 있어 벌써부터 경질설이 나왔고 이번 수해대처과정에서 능력면에 결정타를 당했다.
주 전지사는 지난 14일 충북단양지역 수몰지역 시찰 때 주민들에게 수재의 원인이 정부의 잘못에 있다는 「각서」를 써주어 무책임하고 공권력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이번 일부 개각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강보성 전농림수산장관의 경질이다.
강 전장관은 지난 3ㆍ17 개각때 민자당내 민주계 영입케이스로 입각했는데 전문능력과 행정경험 부족으로 「함량미달」이라는 지적을 입각직후부터 받아왔다.
특히 우루과이라운드와 관련한 농민들의 불만을 적절히 해소시키지 못해 농민대회 등이 잇따라 개최됐고 농어촌대책을 중앙정부차원에서 효율적으로 세우지 못해 농정부재라는 비판을 들어왔다. 강 장관은 능력ㆍ식견면에서 워낙 많은 문제를 일으켜 그를 추천한 김영삼 민자당대표마저 부담스러워했다.
결국 이번 일부 개각은 노태우대통령이 정치적 배려를 일체 배제하고 인물 및 능력위주로 내각을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나름대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집권 후반기를 맞은 노 대통령으로서는 공권력을 회복해 연말까지 경제ㆍ사회 안정을 이룩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정책을 추진할 팀웍 구성이 시급하다.
이번 개각은 전례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져 집권 후반기를 맞아 노 대통령의 우유부단이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시켰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개각설이 일부 나오기는 했지만 정기국회가 끝난 뒤인 12월 중순께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수해로 민심이 흔들리자 노 대통령은 차제에 내각의 환부를 도려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 같다.
청와대 한 당국자는 『노 대통령이 지금까지의 인사스타일을 벗어나 그때그때 문제를 해결하는 인사를 단행함으로써 내각을 긴장시켜 강력한 정책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노 대통령의 「변화」를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의 내각이 김영삼ㆍ김종필씨가 3당합당의 대가로 요구한 지분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짜여진 것이어서 노 대통령이 얼마나 과감하게 인사에 독점권을 행사할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개각은 정치권이 계속 공전되는 가운데 국민들의 여권에 대한 불만 분위기를 일부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어 농림수산장관을 자파몫으로 생각하는 김영삼대표도 수용하는 자세지만 그가 내심 어떤 심사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은 민생안정을 외면하고 계속 국회를 공전시키고 있는 정치권에 간접적인 충격을 줌으로써 여권에 집권자의 의지를 표시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이번 개각이 표방하듯 노 대통령이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고 강력한 정책을 펴 집권후반기를 안정적으로 운영해나갈지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이 어느때보다 매섭다.<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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