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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생활경험 토대 저술활동 늘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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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카운트다운 40일. 내리 1주일을 졸업시험 치르랴, 잇따라 배치고사 보랴, 네 노오란 얼굴을 보며 내 가슴까지 허옇게 바래 간다.… 여기서 쓰러지면 안돼. 이왕 견딘 거 40일만 더 견디자.』
이는 주부 박경신씨(48)가 재수생인 둘째아들 소진 군에게 보내는 편지글형식으로 쓴 『대학은 가서 뭐하니』(도서출판 청노루 발행)의 한 구절이다. 이 책은 아들이 재수하던 지난해11∼12월에 매일 주제를 바꿔 가며 2백자원고지 다섯 장 분량으로 쓴 에세이79편을 모아 엮은 것.
매 편「진아」라는 정겨운 애칭으로 시작. 대학이라는 힘든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채「점수」와 씨름해야 하는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안타까움과 사랑이 「격려」「위로」로 표출되고 있다.
최근 들어 이처럼 주부들이 책을 쓰는 일이 심심지 않게 줄을 잇고 있어 주부들의 저술활동이 새로운 주부문화를 꽃피울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최근 1년 사이에만도『대학은 가서 뭐하니』를 비롯해 『동회 가는 길』(문희자 지음),『한국의 차 문화』(정영선 저),『또 하나의 입덧』(27명의 주부들 글모음)등 이 잇따라 발표됐다.
이같은 주부들의 저술활동이 돋보이는 것은 지금까지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남편의 병간호 경험담이라든가, 어려운 가정살림을 이끌어 간 고생담, 또는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성취한 사랑이야기 등을 소재로 여성잡지에 수기를 발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던 「주부들의 글쓰기」를 한 단계 끌어올리면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제시까지로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
뿐만 아니라 자녀를 돌본 자신의 육아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를 제시하는 준 전문단계의 책을 내기도하고, 『한국의 차 문화』처럼 본격적인 학술전문 서를 내기도해 주부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음을 드러내고 있다.
예컨대『또 하나의 입덧』(도서출판 따님간)은 지금까지 단 한편의 글도 발표해 본 적이 없는 30∼40대 주부 27명이 ▲가족관계 ▲사회에서의 성차별 ▲교육 ▲경제 ▲정치문제 ▲이웃얘기 등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글로 정리한 것이다.
『또 하나의 입덧』을 기획한 도서출판 따님의 박은희씨는『이제까지 주부문제가 주부들 자신으로부터 보다 여성단체 또는 학계를 통해 제기되고 있어 가정·사회전반에 걸쳐 수부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게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하고『이 책은 발간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꾸준히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그간 주부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글로 정리해 발표하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표현력 부족이란 결함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주부들의 저술활동은 책 자체에 대한 평가 외에 가족관계개선에도 크게 보탬이 되고 있다.
1천3백여 년에 달하는 우리고유의 차 문화를 조감하고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차 생활의 실제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 세간을 놀라게 한 정영선씨(41)는『10년 동안 자료를 모으느라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는 바람에 남편과 다툼이 있기도 했으나 정작 한 권의 책이 탄생돼 나오니「실력 인정」은 물론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눈치』라고 말했다. 심지어 자녀들까지도 「책 쓴 엄마」에 대한 주변의 시선을 의식, 행동거지가 점잖아졌다는 것이다. <홍은희 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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