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한국은 소외된 채 합의된 6자회담 재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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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6자회담 재개와 관련, "북한의 핵 보유를 전제로 한 협상은 가능하지 않다"며 "핵 폐기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신임 외교안보 라인의 면면을 볼 때 이런 목표를 관철할 수 있는 의지나 수단이 있는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이전과 같이 '국제 공조'보다는 '대북 유화'에 치중하는 사고방식을 가진 인사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6자회담이 재개돼도 그 전망은 불투명하다. 북한은 금융제재 해제 여부에 전력을 쏟을 게 자명하다. 미국이 다소 융통성을 발휘한다 해도 북한의 핵 제거와 관련된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쉽게 접점을 찾기가 어려운 사안이라는 것이다. 특히 '핵 보유국'으로 인정을 받으려는 북한과 이는 수용할 수 없다는 미국 간에 또 다른 대치전선이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요원하고, 북.미 간 줄다리기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정부가 6자회담 재개를 기화로 마치 '북핵 문제가 해결 과정에 들어섰다'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을 해선 안 된다. 그런데 벌써부터 정부와 여당 일각에선 이런 해석하에 기존 정책을 재고하려는 움직임이 보여 매우 걱정된다. 중단된 쌀과 비료의 지원 재개를 검토한다느니, '대화만이 유일한 해법'이니 하는 목소리가 그것이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는 한마디로 굴복이다. 미국이 금융제재를 해제하지 않으면 6자회담에 참석할 수 없다던 북한이 '논의하자'는 차원에도 응했기 때문이다. 이는 일치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가 북한체제에 미칠 폭발력을 두려워한 것이다. '북한에 제재를 가하면 북한이 반발해 긴장이 고조된다'는 단선적 사고가 얼마나 오류였는지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 점을 한시라도 망각해선 안 된다.

이번 합의 과정에서 이 정권은 한국의 머리 위에서 북.미.중이 무엇을 하는지 깜깜했다. 그 이유는 명료하다.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그 심각성을 모르는 노무현 정부에 미국은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북한은 자신의 체제 유지 여부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 관건을 쥐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러니 한국에 뭘 얘기해 주겠는가. 정말 창피하고 참담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대오각성해야 한다. 한번 겪었으면 됐지 두 번 다시 당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북한과 미국의 속내가 드러난 이상 이제는 정말 전략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 핵실험을 비롯한 북한의 부당한 언행에 대해선 단호하게 경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현실적으론 미국에 의존하면서 정치적 의도로 미국에 큰소리치려는 치기 어린 발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한국에 주어진 '현실'도 모르고, 주제 파악도 못하면서, 마치 한국이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허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화의 문은 열어두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는 철저히 공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장관이 언급한 '핵 제거를 위한 6자회담'은커녕 국제미아만 된다는 점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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