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과업계엔 '벤처정신'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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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과업계에 벤처정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성패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내세워 블루오션형 신상품 개발에 사력을 쏟기보다는 손쉽게 수익을 도모할 수 있는 미투(Me Too)상품이나 짝퉁 제품에 주파수를 맞추는 업체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른 회사의 제품에 자사의 브랜드를 붙인 뒤 손쉽게 이름 장사만 하는 곳도 많다. 올 들어 제과업체 간 상표권 분쟁이 부쩍 늘어난 것도 결국 이 같은 이유라고 1일 헤럴드생생뉴스가 보도했다.

▶미투, 짝퉁, OEM 상품만 범람=롯데제과는 올 들어 10월 말 현재 과자, 껌, 스낵 등 70여종의 신제품을 출시했다. 신제품을 매주 2개꼴로 쏟아낸 셈이다. 그러나 '드림 카카오'처럼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가미된 블루오션형 제품은 전체의 15%에 해당하는 10종에 불과했다.

50여종의 신제품을 양산한 해태제과도 블루오션형 신상품은 겨우 9개 안팎이다. '뮤렌' '이구동성' 등 총 14개의 신제품을 선보인 오리온과 크라운제과 등도 별반 차이가 없는 실정이다.

이는 천문학적인 개발비와 시간이 소요되는 블루오션형 신제품보다는 손쉽고 빠르게 매출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미투나 짝퉁, 리뉴얼 상품에 신상품 개발 전략을 맞춰놨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품 전략이 성행하면서 업체 간 상표권 분쟁도 잇따랐다. 롯데제과-해태제과 간의 석류미인 껌 상표권 분쟁이 최근 불거진 사건이다. 주문자상표부착(OEM) 상품도 경영진이 손쉽게 장사하기 위해 손대는 사업이다. 지난 1900년대 10 ̄15% 안팎이던 OEM 상품비중이 올해는 20 ̄30%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업체마다 대략 20 ̄40종이 손쉽게 이름 장사하는 OEM 상품이란 얘기다.

이에 대해 해태제과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에서 만들어 납품하는 OEM 상품도 품질이 대기업 못지않게 뛰어난 게 사실"이라며 "OEM 신상품은 저비용, 저위험, 고효율의 효과 측면에서 플러스 요인이 많다며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연구.개발보단 광고 판촉에 올인=제과업체들은 제품의 연구.개발보다는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벤트나 광고 판촉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연구.개발비는 해마다 뒷걸음질치는 반면 이벤트나 광고판촉비는 천문학적인 돈을 물쓰듯 펑펑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각 제과업체의 지출 내역서를 들춰보면 이 같은 변화를 금세 간파할 수 있다. 롯데제과는 올해 상반기 매출액(5223억 원)의 0.42%에 해당하는 21억 원을 신제품 연구비로 지출했다. 반면 광고비(230억 원)와 홍보비(76억 원) 등 판촉비는 총 306억 원으로 연구.개발비를 15배 이상 상회했다.

크라운제과도 이 기간 중 광고활동에 374억 원을 투입했지만 연구.개발 부문엔 매출액(1522억 원)의 0.3%인 4억9000만 원만 사용했다. 해태제과, 오리온 등도 매출액 대비 신제품 연구비가 0.3 ̄0.5%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같은 추세는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전문가의 견해다.

롯데제과 측은 "올해는 신제품이 예년보다 30% 가량 줄었다"며 "연구비 및 시설비 절감, 위험부담 감소 차원에서 광고판촉 활동을 강화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digit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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