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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도착한 민노당의 일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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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문성현 민노당 대표

"자신들의 패권을 위해서라면 한반도에서 언제라도 전쟁을 일으켜보겠다는 미국과 일본의 준동이 계속되고 있다."

31일 오후 1시 고려항공 편으로 평양에 도착한 13명의 민주노동당 방북단의 일성이다. 문성현 대표는 순안공항에서 이런 말이 담긴 성명서를 발표했다. 위 구절은 이렇게 이어진다. "북측이 진행한 핵실험을 둘러싼 또 다른 긴장과 대립이 우리 모두를 답답하게 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전쟁을 일으키려 준동'하고, 북한은 '핵실험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문 대표는 출국 기자회견에서 "북 핵실험에 유감과 추가 핵실험 반대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방북한다"고 했다. 그러나 문 대표의 도착 성명서에선 그런 의지를 읽기가 어려웠다.

"북측 동포 여러분께"로 시작하는 대북용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 해도 방북단의 성명서는 민노당 지도부가 북한과 핵실험에 대해 갖는 인식의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민노당 대표단은 4일까지 북한에 머무르며 남북 합작 공장과 김일성종합대학.협동농장 등을 둘러본다. '고위 당국자'면담은 방북 사흘째(2일)쯤 이뤄질 것이라고 민노당 측은 말했다. 민노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면담을 신청해놨다고 한다.

◆노동당 아닌 사민당의 초청=6.15 공동선언으로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된 2000년 10월 북한 당국의 초청을 받아 민노당.민주노총 등 8개 단체가 방북했다. 그때 민노당과 조선사민당이 양당 간 정기 교류에 합의했고, 그 일환으로 민노당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평양에 올라간 것이다.

이에 대해 당 안팎에서 "조선노동당이 권력을 독점한 북한에서 조선사민당이란 허울뿐인 정당의 초청에 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 대변인실 관계자는 "가뜩이나 최기영 사무부총장 구속 문제로 여론이 안 좋은데 북한의 핵심 당국자도 아닌 조선사민당 관계자들만 만나 '들러리나 섰다'는 비판을 받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방북단에 포함된 권영길.노회찬 의원은 출국 직전까지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권 의원 측 관계자는 "북핵 문제 해결에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진정성을 갖고 가는 길인 만큼 여러 고민이 많았지만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조선사회 민주당=북한은 노동당 1당 지배체제지만, 겉으론 '조선사회민주당' '조선천도교청우당' 등 2개 정당이 더 있다. 그러나 두 정당은 실질적인 조직을 갖추지 못했고 대남 비난성명을 발표하거나 남북 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 개최를 제의할 경우에나 등장한다. 이름뿐인 정당으로 노동당 외곽조직에 가깝다. 이번에 민노당을 초청한 조선사회민주당은 1945년 평양에서 창립된 '조선민주당'(초대 당수 조만식)이 모체다. 81년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당 지도이념으로 채택하면서 당명을 바꿨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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