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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6년간 62억원 썼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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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환경 문제 해결을 기업 및 시민단체와 협의하기 위해 대통령 자문기구로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설치하고, 경제정책과 환경정책의 사전조율과 상호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2000년 6월 5일 세계환경의 날 기념식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이렇게 지시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지속가능발전위원회(지속위)'다. 지속가능발전이란 환경보전을 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1992년 브리질 리우 환경회의 이후 세계적인 화두가 됐고, 국내에서도 90년대에 환경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적지 않은 관심이 쏠려 있었다.

지속위는 위원장을 장관급으로 하고 재정경제부와 환경부 등 10여 개 부처 장관을 위원으로 참여시켰다. 그 정도는 돼야 사회 각 부분의 갈등을 풀 수 있다는 기대를 반영한 것이다.

애초 구상과 달리 위원회의 활동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강문규 1기 위원장은 2001년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든 새만금 간척사업을 둘러싼 갈등 조정에 나섰다. 지속위는 갈등 해결책으로 간척사업을 유보할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그러나 건의는 무시되고 간척사업은 그대로 진행됐다. 위원 중 일부가 정부의 결정에 반발해 위원회를 탈퇴해 버렸다. 2002년 취임한 박영숙 2기 위원장 역시 새만금 간척사업 갈등 조정에 나섰지만 소득이 없었다. 고철환 3기 위원장은 새로운 어젠다에 손을 댔다. 한탄강 댐이었다. 2004년 1년 가까이 중재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지난해부터는 환경부(수질), 건설교통부(수자원)로 이원화된 물 관리 업무의 통합을 시도했지만 올 5.31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는 바람에 무위로 돌아갔다.

환경운동가들은 "지속위의 지속가능성부터 확인해야 할 것 같다"고 비아냥거릴 정도로 지속위는 우스운 존재가 돼 버렸다. 지속위는 31일 '국가 지속가능발전 전략 및 이행계획(2006~2010년)'을 발표했다. 2000년 9월 발족한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이 계획은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 보고됐다. 보고서에는 201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보급 비중은 2.3%에서 5%로, 국민 1인당 공원면적은 8.2㎡에서 9.8㎡로 늘리겠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234쪽짜리 보고서 어디에도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담겨 있지 않다. 국민임대주택 100만 호 건설'과 '녹지총량제', '수자원 추가 확보'와 '댐 건설 지양'등 서로 상충하는 과제가 잔뜩 나열돼 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상충하는 문제를 풀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다. 부처별로 발표된 목표를 취합한 인상이 강하다. 223개 세부 과제 역시 대부분 각 부처에서 이미 추진 중인 사안이다.

이런 지적에 김상희 위원장은 "사회적 형평성과 환경보전이 충돌할 수도 있고 개발이 불가피할 때도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건설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으냐"고 답했다. 6년간 62억원의 예산을 사용한 결과가 이 정도라면 "위원회가 왜 필요하냐"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다. '참여정부=위원회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각종 위원회가 많다. 위원회 모두가 지속위처럼 이름뿐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강찬수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