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7가] 차라리 그를 '보초'라고 부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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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실수의 미학'이라고 합니다. 방심이나 착각에서 비롯된 '삐끗' 한 수가 대세를 가르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실수는 득을 보는 입장에선 운입니다. 그래서 프로 기사들은 지장(智將)보다는 운이 따르는 복장(福將)을 만났을 때 더 곤혹스러워합니다.

야구는 바둑과 일맥상통합니다. 실투 한 개 실책 한 개 심지어 오심 하나로 경기가 소용돌이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다만 바둑과 다른 게 있습니다. 바로 '훈수'입니다. 반상 앞의 기사는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야구에선 훈수가 정당합니다. 오히려 승리의 요체이기도 합니다. 감독의 중요한 노릇 중 하나도 바로 그것입니다.

얼마 전 다저스가 파드레스전서 빅리그 사상 네 번째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4타자 연속 홈런. 다저스의 아치쇼가 더욱 극적이었던 것은 5-9로 뒤진 9회말 터져나왔다는 점입니다(이전 세 차례는 큰 점수차로 뒤지거나 이기고 있거나 연장 11회 동점 상황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런 기적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런가요? 앞서 꺼낸 '감독의 훈수'란 점에서 생각하면 다저스의 홈런쇼는 불가항력이었다기 보다는 인재(人災)의 개연성도 충분합니다. 바로 브루스 보치 파드레스 감독이 너무나도 갈팡질팡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게임을 복기해보죠.

먼저 8회초 2점을 뽑아 다시 6-4로 앞서고 맞은 말수비. 그는 스캇 라인브링크를 4번째 투수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나오자마자 3루타에 안타를 거푸 맞고 1점을 내줬습니다. 2사 후 다시 2루타. 게임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마무리 트레버 호프만이 8회부터 나와도 시원찮을 판이었고 라인브링크가 불안하기 짝이 없었는데도 그대로 밀어붙이더군요. 요행히 상황은 거기서 끝이었습니다.

문제의 9회. 파드레스는 3점을 또 달아났습니다. 그러자 불펜서 몸을 풀던 호프만이 불러들여지고 재럿 앳킨스가 나왔습니다. 두 가지를 감안했을 것입니다. 먼저 4점차에 한 이닝만 남았으니까 안정권으로 봤거나 호프먼에게 세이브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언감생심입니다. 첫째 '안정권'은 게임의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한 소산입니다. 이날 경기는 먼저 4실점한 다저스가 계속 추격해 동점을 만들고 다시 달아나자 따라붙는 흐름으로 점입가경이었습니다. 9회말 쓰리아웃이 될 때까지 예측을 불허했습니다. 그렇다면 4점차라도 호프만을 투입해 쐐기를 박는 게 당연한 제일감이었습니다. '세이브 불성립'은 논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순진하게도 경기가 그대로 끝날줄 알았던 보치는 홈런쇼가 시작된 뒤에야 부랴부랴 호프만을 올렸지만 용의 얼굴에 이어 마지막 눈까지 그려주고 맙니다. 그는 그러고도 납득할 수 없는 실수를 보탭니다. 다시 1점차로 앞선 10회말 호프만을 아꼈다가 끝내기 홈런을 맞고 장렬하게 대미를 장식합니다. 그에 대한 변은 이랬습니다. "전날 21개나 던져서 끌고갈 수 없었다." 호프만은 이틀을 쉬고 21개를 던졌고 그 날 투구수는 11개에 불과했습니다. 더욱 전에도 20개 이상을 던지고 이틀 심지어 사흘 연속도 나왔습니다. '지 알고 네 알고 하늘도 알건만….'

교과서에 나와 있는 그대로 하고 경기의 아우라도 못맡는다면 야구를 웬만큼 좋아하는 장삼이사(張三李四)도 덕아웃에 앉아있을 겁니다. 해바라기씨야 누구나 까먹을 수 있으니까요. 보치 감독은 발음도 이상해서 어떤 이는 그렇게 부르고 또 다른 이들은 보쉬라고도 하는데 이 참에 우두커니 서 있는 '보초'라고 통일하는 게 어떨른지요. 그나저나 그 보초가 복장은 복장인가 봅니다. 시즌 막판에 그런 참변을 당하고도 여전히 선두를 달리고 있으니까요. 그럼 다저스는 뭔가요?

미주중앙일보 구자겸 스포츠팀장
신문발행일 :2006. 09. 26 / 수정시간 :2006. 9. 25 1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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