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시조는 명칭 그대로 시절가조다. 시절의 노래다. 시절의 노래라는 것은 결국 가장 현실과 맞닿아 있는 노래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여기에서 현대시조가 가야할 중요한 방향의 하나를 우리는 알게 된다. 시적 현실이란 우리 삶의 일상적 현실이 아니다. 시인이 차용한 의태현실이 시적 현실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조 속에 현실을 담아야한다. 산도 물도 달도 꽃도 좋다. 그리고 농촌의 풍경도 공해도 찌든 도시의 풍경도 좋다. 그러나 동시대인으로서 정말 외면할 수 없는 시대고 앞에 시조는 늘 무력해 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희정씨의 「신 사랑가」를 아쉬운 대로 장원으로 내놓는다.
그의 작품은 가두시위 현장을 노래하고 있다. 진실한 역사의 이야기가 그의 가락 속에 내면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최루탄 냄새를 시조의 가락으로 건져 올려 보려는 그의 야망을 높이 사고싶다. 차상으로 뽑힌 「빗살무늬 그릇에(I)」의 최정림씨는 가락을 잘 체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선 시인의 제일 첫 자질에 해당하는 언어구사력이 뛰어나 보인다. 그러나 그의 또 다른 면에서의 약점은 시조에서 흔히 발견되는 회고조의 안일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차하로 뽑힌 「달걀 껍질 속의 공간」의 이우식씨는 매 회마다 성의 있게 여러 편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수준도 고르다. 특히 「달걀 껍질 속의 공간」에서 보여지는 첫 수의 치밀한 시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둘째, 셋째 수는 거의 산문으로 떨어져 있다. 다만 조금만 더 많이 읽고 생각하면 좋은 시인이 되리라 짐작된다.
입선작으로 박미경씨의 「섬」, 이지나씨의 「그리움」, 이용희씨의 「입추」, 김시복씨의「연꽃」, 이인수씨의 「그해 여름 하루」 등을 뽑았다. 「섬」은 간절한 사람의 가락으로 호감이 가고 「그리움」은 노력하면 좋은 시를 쓸 자질이 엿보이고 「입추」는 계절을 묘사하는 솜씨가 만만치 않다.
그리고 멀리 미국에서 보낸 「연꽃」은 소박한 사람의 감정이, 「그해 여름 하루」는 특별한 작자의 의도 없이 대상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다. 언어구사력 그리고 시적 현실의 적적한 조화가 좀 더 절실해지는 달이었다. 【<심사위원: 이우걸·김영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