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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도 「변화기미」보인다-세계의 언론들이 전하는 요즘 분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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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북한이 과연 변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해 지금까지는 북한이 체제의 본질적인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부에서는 부분적으로 「변화의 기미」가 가시화되고 있다는데 일반적인 관측이다. 특히 일부 외국기자들의 북한 르포기사를 보면 이 같은 현상이 확인된다. 북한이 자신에 대한 정보를 대내외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각종 르포에 나타나는 「작은」변화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 그 하나하나를 종합, 분석해봐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세계의 언론을 통한 북한의 변화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정치 및 대외자세>
북한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당의 「영도」적 지위와 김일성(수령)의 유일 지배체제가 확립돼 있다는 점이다. 특히 김일성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이 강조되는 북한에서는 어디를 가나 김일성 동상과 초상화가 즐비하고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단 주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워싱턴 타임스의 마이클 브린은 5월말에 쓴 르포에서 이에 대한 약간의 변화모습을 묘사해 관심을 끌고 있다.

<서구인에 우호적>
브린 기자는 북한의 김일성이 최근들어 자신에 대한 우상화작업의 정도를 낮추고 있는 것 같으며 김은 자신의 동상제작을 중지하고 자신을 기리기 위한 국가적 연회도 가급적 억제할 것을 명령했다고 동구의 교관들이 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대외자세의 변화에 대해 『북한사람들은 이제 수입기계류에 부착한 외국상표를 은폐하려 들지 않으며 평양시민을 비롯한 지방도시주민들도 서구인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고전하고 있다. 이 르포는 자력갱생적 폐쇄노선을 고수해 온 북한이 다소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음을 전하고 있다.

<경제생활>
홍콩의 시사주간지 파 이스턴이코노믹 리뷰지는 7월초 지난 4월에 평양을 방문했던 오스트리아국립대의 개리 클린트워스 교수의 기고를 받아 경제적 측면에서의 「평양의 페레스트로이카」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생산량에 따라 노동자들이 추가로 현금보너스나 상품·메달 등을 받고 있다. 부분적이기는 하나 자영업도 허용되고 있다. 북한이 점차 현금경제로 이행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지폐가 종전의 배급권을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조금에 의해 싼값으로 공급돼 왔던 난방·임대료·수도·전기 등의 비용을 현실화(인상)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은행이자(일반예금 1∼2%, 정기예금3∼5%)도 지급된다. 심지어 국가가 운영하는 복권도 등장, 당첨자는 TV한대를 구입할만한 「고액」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청률·함흥·판문점, 그리고 북방의 일부지역 등 군사관련 지역을 제외하고는 여행제한도 크게 완화됐다.

<배급권 대신 지폐>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7윌6일의 르포기사에서 『평양역 지하도에는 교외에서 온 아주머니 두 사람이 금붕어를 팔고 있었다. 한 마리에 50전(약1백60원)하는 이 금붕어를 지나가던 젊은 여성이 사고 있었다. 과거의 북한에선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이 같은 일이 평양중심부에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면 전국적으로는 더 개방돼있다고 생각된다』고 보도해 개인적 영업행위가 확대중인 것으로 관측했다.
마이니치신문도 8월27일자 르포 기사에시 일본 사회당관계자의 말을 빌려 『공업의 중심도 중공업에서 가정제품 등을 제조하는 경공업으로 이행하고 있는 등 생활중시의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는 것을 보면 인민의 불만에 대해 부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마이니치신문의 르포기사는 피라미드형의 고층 호텔인 「유경호텔」(105층)의 공사가 지연되고 있는 것과 관련, 기술자·자재 등이 평양통일거리의 주택공사에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북한당국의 「주택 우선」정책을 전했다.

<주민생활>
주민 생활상의 변화와 관련해 일본 아사히신문(8월22일자)은 『북한이 주체사상을 내걸고 독자적인 사회주의 건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대중소비사회」의 문턱에 들어서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하고 그 증거로 『북한에서도 최근 연애 결혼이 늘어 중매결혼과 반반이 됐고 의류 등 소비부문의 생산품이 다양화되는 한편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주택 우선」정책>
이 신문은 또 『평양에서는 수년전에 비해 여성들의 복강이 컬러풀하게 화려해졌다. 사람들의 구두도 가죽제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기자가 실제로 돌아 본 강원도·양강도의 농촌에서는 아직 헝겊제품의 구두가 눈에 띄었고 복장도 비교적 수수했다』고 보도했다.
주민생활상의 변화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패션의 변화다. 모스크바 방송은 지난 7월22일『북한에서도 금년 여름철에 접어들면서 짧은 바지와 반팔와이셔츠 차림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주민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북한주민들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옷차림을 한 사람을 「얼빠진 사람」으로 취급, 젊은이들은 이를 비웃고 노인들은 분노의 시선을 던지기까지 했었다』고 전하면서 『이 같은 옷차림에 대해 북한 경공업부의 한 관계자는 「유행」이라고 지적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아사히신문은 7월5일자 평양 발 기사에서 몇 해전에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는 일본인의 말을 인용, 『여성들의 의상이 매우 다채로워졌다』며 『평양시내 중심가에 있는 제1백화점 1층의 화장품 매장에는 연일 화장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긴 줄을 서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이 생활필수품의 디자인을 다양화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증거도 보인다. 북한의 중앙방송(7월27일)은 최근 생활디자인 전문책자가 출간됐다고 보도했다.

<청소년 문화>
청소년 문화도 비록 부분적이긴 하나 변하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단적인 예로 「팝뮤직」형태가 새롭게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8월16일자)는 방콕주재 특파원 테리 맥카디가 쓴 평양르포기사에서 평양의 국립극장에서 본 한 콘서트를 소개하면서 그 같은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유행 따른 옷차림>
『콘서트에서 커튼이 올라가자 「체임스 라스트」악단 스타일의 오키스트라 모습이 나타났다. 이 오키스트라는 멋진 새 「야마하 키보드」드럼세트, 그리고 「지미 헨드릭스」비디오에서나 봄직한 전기기타까지 갖추었다. 연주하는 음악 또한 「제임스 라스트」스타일이었다.
무대에 등장한 여성중창단은 60년대 스타일의 오렌지색 가죽미니스커트를 입고 흰색 롱부츠를 신었다. 이들은 인기유행가로 보이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안내인에 따르면 이것은 북한 청소년들에게 어필하려는 시도라고 한다. 그러나 노래의 내용은 「사회주의·공산주의의 건설과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맥카디의 이 같은 르포 내용은 다른 르포에서도 비슷하게 확인된다.
아사히신문(8월 22일자)은 『젊은이들 사이에는 수년전부터 러브 송과 연애소설이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평양에서는 콘서트의 입장권을 쉽게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를 누리는 팝 그룹도 등장한 것으로 들었다. 이러한 경향은 청소년들의 「정치이탈」과 연결되는 면도 있다. 「주체사상으로 무장하고 사회주의건설로 나아가자」고 호소하는 한편 유연한 정책도 도입하려 하는 북한 당국으로서는 골치 아픈 문제인 것 같다』고 보도했다.

<연애소설이 인기>
요미우리신문(7월6일자)은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노래는 짝 사랑을 내용으로 한 록 풍의 가요 「휘파람」이다. 이 노래 같은 경쾌한 리듬은 혁명가가 주류를 이뤘던 북한에서는 신선한 것』이라고 전했다.
외국기자들의 르포에서 뿐 아니라 지난 7월23일 로동신문이 만수대예술극장에서 「보천보 전자악단」(단원10명)이 첫 공연을 가졌다는 기사를 실었던 것도 놀라운 일이다. 이 공연에서는 「행복 넘쳐라 나의 조국이여」로 시작해 「아리랑」등의 민요, 「수령님 은덕일세」등 당 정책 가요, 그리고 「도시처녀 시집와요」「휘파람」「축배를 들자」대중가요들을 연주했다는 것이다. 평양에는 디스코테크도 최근 생겨 람보 춤까지 젊은이들이 추고 있다고 한 일본 잡지가 전하고 있다.
이같이 북한에선 최근 사회내부의 변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모습만으로는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점진적인 변화의 전체상을 보여주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미 북한에서도 변화가 시작됐음이 틀림없다. <유영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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