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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소설『죽은 시인의 사회』중복출판"말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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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 5월 국내 개봉되면서 우리의 교육현실과 관련, 관객들 사이에 소리 없는 파문과 감동을 던지고 있는『죽은 시인의사회』가 한달 남짓의 시차를 두고 소설 구성형식으로 성현출판사(대표 조유성)와 도서출판 모아(대표 오종만)등 2개 출판사에서 중복 출판돼 양사간 마찰음이 점차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된『죽은 시인의 사회』(원제 Dead Poets Society)는 단순히 같은 내용의 책을 같은 제목으로 중복 출판한 국내 출판사끼리의 판매경쟁 차원을 넘어 양사가 취한 텍스트(대본)의 저작권이 모두 미국의 더 월트디즈니 컴퍼니에 귀속돼 있다는 점에서 국제간 저작권 분쟁으로까지 번질 소지를 안고있어 주목된다.『죽은 시인의 사회』를 한발 먼저 번역「출간한 쪽은 성현 출판사. 성현은 작가 N·H·클라인바움이 89년 내놓았던 같은 이름의 소설을 문창연씨 번역으로 출간, 지난 6월23일 전국 서점에 깔았으며 이 책은 배본 2주만에 종로·교보 등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소설부문차트에 오르는 등 미처 예기치 못했던 호조의 판매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당초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책을 번역해 펴냈던 성현 출판사 측은 말썽이 따를 것에 대비, 지난 1일자로 원저작권자인 월트디즈니사 한국총대리점(주)백두와 동 소설에 대한 라이선스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외국영화소설을 전문 출판하는 도서출판 모아가 한달 남짓 뒤인 지난 10일 같은 제목의 소설을 출간, 서점에 깔면서 문제가 생겼다.
모아의 책은『죽은 시인의 사회』의 국내 개봉전인 작년 여름 영화 조감독이며 시나리오작가인 김미정씨가 비디오 영상을 토대로 정리·각색한 소설로 다시 올 봄 입수한 톰슐만 원작 시나리오를 참조했다.
모아의 동명소설이 출판되어 서점에 깔리자 선발주자인 성현 측은 지난16일 월트디즈니와의 계약서 사본을 첨부, 모아 측에 적절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성현 측은 이 내용 증명에서『모아가 이 책을 출판함으로써 성현의 기존시장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도서유통상의 혼미를 초래했다』고 밝히고『모아 측은 성현의 이 같은 정신적·재정적 피해에 대해 저작권법과 일반관례에 근거, 손해를 배상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도서출판 모아 측은『우리가 사용한 텍스트는 성현 것과는 다른 톰슐만의 원작 시나리오이며 이 시나리오가 85년 작이므로 국내 저작권법 상으로 하등 보호할 대상이 못된다』고 말하고 있다. 모아 측은『그러나 일을 깨끗하게 매듭지을 작정으로 지난 20일 저작권 에이전시인 바다 저작권 회사를 통해 월트디즈니사에 시나리오 대본 사용 승인을 신청해 놓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로 다른 두 텍스트의 원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 월트 디즈니사는 두 출판사의 사이에 끼여 아직도 현안 처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월트 디즈니 한국대리점(주)백두의 이영방 차장은『톰슐만의 시나리오가 언제 씌어졌는지, 그 시나리오와 클라인바움의 소설이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그리고 모아의 대본 사용 승인신청을 어떻게 처리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모든 것을 미국 월트디즈니 본사에 문의해놓고 있는 상태』라며『월트디즈니사와 관련된 최근의 잡음을 고려해서라도 성현·모아 양쪽이 말썽 없이 다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도록 노력하자는 것이 우리의 기본입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월트디즈니사는 최근 저작권보호의 대상이 아닌 자사 영어교재와 카셋 테이프를 복제해 국내시장에 팔고 있는 교육문화사를 부정경쟁 방지법 위반으로 제소, 출판계에 한차례 회오리를 불러일으킨바 있다.
그런데 외국 번역물의 중복 출판에 의한 국내 출판사들끼리의 경쟁이 저작권 사용 계약상 사용자측에 많은 불이익을 안겨주고 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번 경우에도 성현출판사는『죽은 시인의 사회』의 저작권 사용을 월트디즈니사와 사후 계약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협의를 거치지 못한 채 월트디즈니 측이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조건에 도장만 눌렀다는 후문이다.
월트디즈니 측은 계약 조건으로 통상 3∼5년인 유효기간을 1년으로 못박았고 5천부이상 판매될 경우 12.5%(보통은 7∼8%)라는 상식이상의 높은 로열티 지불을 요구했다. 또 광고를 위해 책 속의 캐릭터를 사용할 때도 저작권자에게 그때그때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등의 번거로운 절차를 요구하고 있다.
성현출판사의 조유성 대표는『모아 측이 뒤따라 책을 펴내는 바람에 쫓기듯 계약을 맺었다. 그래서 그들이 내미는 조건을 꼼꼼히 따질 여유도 없이 도장을 눌렀을 뿐이다. 협의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출판계의 한 인사는『외국 저작권자들의 이 같은 횡포가 가능한 것은 출판인들이 중복 출판 등을 통해 무분별하게 상업적 경쟁을 함으로써 스스로 약점을 잡히기 때문』이라며 국내출판인들의 자제를 촉구했다. <정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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