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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인의 여포로』인민군 긍정적 묘사|이만희 감독 반공법 위반 구석-임영(영화평론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만추』는 이만희 감독이 1966년에 연출해 그의 대표작이 되는 동시에 한국영화의 대표적 걸작이 된다. 1981년에는 김수용 감독이 이것을 다시 연출해 마닐라 아시아 영화제에서 김혜자가 여우주연상을 탄다.
『만추』는 한국영화사상 대사가 극도로 절제된 영상미와 예술성이 가장 높은 영화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것은 김지헌 작가(60)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다.
그 당시 제작하던 호현찬씨(필름보관소 이사장) 에게서 보자는 전화가 와서 갔더니 김동리의『무녀도』를 각색하란다. 집에가 다시 한번 읽고 나서 느낀 것은 이것을 지금 새삼스럽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뭔가 더 신선한 것이 없을까. 그래서 호현찬 씨에게 그러한 뜻을 전하고 좀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무교동 용금옥에서 이만희 감독과 추어탕을 먹고 있었는데 그가 재미나는 얘기를 했다. 『7인의 여포로』(65년)를 연출하고 반공법 제4조 1항에 걸려 구속되어 재판까지 받고 나온 그가 거리를 걷고 있었다. 누군가 어깨를 툭 쳐서 돌아봤더니 감방에 같이 있던 작자가 아닌가. 반갑다는 감정보다 우선 가슴이 섬뜩했다. 탈옥해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고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나왔느냐고 물었더니 모범수 휴가로 나왔다는 것이었다. 이 얘기를 들은 김지헌 작가에게 번뜩 이것으로 얘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만추』는 이 휴가 나온 모범수를 여자로 만들어 1개월만에 탈고했다.『만추』에서 모범수 휴가 나온 문정숙은 기차 칸에서 위조 지폐범으로 쫓기는 신성일을 만나 순간의 정열을 불태우고 후일을 기약하나 영 다시 만나게 되지 않는다는 멋있는 허무적인 얘기다.
이것은 감각적으로 유럽영화를 연상시키는 세련된 얘기였다.
이만희 감독이 반공법으로 걸려 들어갔던 『7인의 여포로』에선 포로가 된 국군 간호장교들이 중공군에게 겁탈 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들을 호송하던 인민군이 중공군과 싸워 물리치고 귀순하는데 그 인민군이 인민군답게 나쁜 놈이 아니고 인격적으로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는 것이 당국의 비위를 건드렸다.
이때 영협 감독 분과위원회는 관대한 처분을 바라는 진정서를 냈고 유현목 감독 등이 이만희 감독의 무죄를 주장하는 글을 발표했다가 입건되기도 했었다.
김지헌 작가는 이『만추』와 『문』(유현목 감독·77년)으로 대종상·백상예술상 등의 각본상을 탄다. 지금까지 오리지널 각색 합해서 1백여편 썼다. 1980년에 도미, 미주 한국 영화인 협회장으로 한국영화의 시장개척을 위해 노력을 해봤으나 별 성과는 없었다.
작년에 귀국하여 다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재미 한국인 청년의 현대적 생활상을 그린『별의 유역』, 동학배경으로 판소리꾼의 얘기를 그린『시호시호 쑥대강』, 사회비판적 수사극『역류의 사람』, 소련영공을 침범했다고 격추된 KAL기사건의 생존자 17명을 가상해서 쓴『에밀레의 기적』, 한대운 목사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문화단체가 제작할 30년 후의 한국사회를 가상한 『21세기의 소돔과 고모라』등이 그것이다.
그에게는 일제 때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하고 옥사한 주기철 목사의 일대기를 그린 오리지널『저 높은 곳을 향하여』(임원식 감독·77년)가 있는데 이것은 그 당시 당국과의 옥신각신으로 윤삼륙 각본으로 발표되었다.
김지헌 작가는 당초『현대문학』지에 시 추천이 완료된 시인이었다. 1959년『종점에 피는 미소』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에 당선된다. 심사위원은 오영진·유치진씨였다.
명동 어떤 대포집에서 연극인 이광내 씨와 대좌하고 있었는데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로 있던 최일수 평론가가 헐레벌떡 좇아왔다.『당신 것이 일단 결정은 되었는데 이 사람이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한번 만나봐야 하겠다고 오영진 씨가 말하니 어서 찾아가 보게』했다. 김지헌 작가는 본명이 김최연이다, 평소 사사하다시피 한 오영진 씨는 김지헌 이라는 필명으로 냈기 때문에 그를 못 알아봤다.
찾아간 김지헌 작가에게 오영진 씨는『그게 자네 거였나. 어쩐지 좀 다르더라구』했다. 지금까지 좋은 작품들을 써왔지만 앞으로도 더욱 기대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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