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객원의학전문기자의우리집주치의] 의사 선생님, 진찰은 안 하나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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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그러나 비싼 약값을 지불해야 하는 건보 재정은 휘청거립니다. 몇 달 후 결국 여러분의 월급으로 인상된 건강보험료가 청구될 수밖에 없습니다. 환자도 손해입니다. 당장은 혈압과 콜레스테롤이 떨어져 좋지만 앞으로 평생 약의 노예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운동과 식사 등 환자의 생활습관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면 해결할 수 있는데 의사도 관심 밖입니다. 1분을 진료하나 30분을 진료하나 환자로부터 받는 진료비는 동일하기 때문이죠.

두통 환자가 왔습니다. 단순 두통인데 뇌혈류검사에서 뇌MRI까지 검사란 검사는 죄다 하는 의사들이 있습니다. 검사에만 수십만원이 소요됩니다. 물론 논리는 있습니다. 뇌종양이나 뇌혈관질환 등 치명적 질환이 숨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란 것이죠. 그러나 여기엔 비용효과의 원칙이 무시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두통 환자에게서 뇌종양 등 질환이 있을 확률은 수천 분의 1이기 때문입니다. 환자와 의사 간 불신이 쌓일수록 의사들은 방어진료를 하게 되고 환자들은 닥터 쇼핑과 함께 많은 경제적 부담을 져야 합니다. 의사들도 손해입니다. 조금만 탈이 나도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이 날아오기 때문입니다.

진료실에서 진찰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계적인 약 처방이나 고가검사가 진찰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검사 결과를 입력하면 약 처방을 출력하는 로봇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진료의 본질은 진찰입니다. 정성이 담긴 진찰을 통해 환자와 의사 간 신뢰가 구축되고 최선의 처방이 도출되기 때문입니다.

진찰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선 각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의사는 '환자가 내 가족이라면'하는 심정으로 진찰에 임해야 합니다. 약 처방과 검사로 도배질하는 것은 전문가적 양심을 저버린 행위입니다. 환자는 의사를 믿어야 합니다. 의사를 믿을수록 의사도 안심하고 다소 부작용이 예상되지만 확실하고 공격적인 처방을 내릴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검사로 인한 비용도 아낄 수 있습니다.

진찰료의 인상도 필요합니다. 현행 3000원의 본인부담금을 포함한 1만원 내외의 진찰료는 의사들의 진지한 진찰을 요구하기엔 비현실적으로 낮은 수가입니다. 약을 받거나 검사를 받는 것보다 전문가인 의사의 시간을 빼앗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진찰료 인상은 불필요한 약 처방과 검진에 따른 거품을 뺄 수 있어서 국민 건강은 물론 경제에도 이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홍혜걸 객원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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