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가을 내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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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가을비가 내리더니 잎들은 더욱 붉은 기운을 머금고, 제법 서늘해진 공기에서는 가을 냄새가 묻어난다. '가을 냄새' '가을 내음' 어느 것이 더 맛이 날까. 시의 '노을이 타는 내음'처럼 '가을 내음'이 훨씬 더 맛깔스럽다.

'내음'은 '바다 내음' '흙 내음' '시골 내음' '고향 내음' '사람 내음' '봄 내음' '꽃 내음' 등과 같이 시적이고 멋스러운 표현으로 두루 쓰이고 있다. 그러나 규정상 '내음'은 경상도 방언으로,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가을 냄새' '바다 냄새' '흙 냄새' '시골 냄새'라고 하기에는 영 내키지 않는다. '냄새'는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현상 이상을 나타내지 못한다. 여기에서 규정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발행한다. '나래→날개' '떨구다→떨어뜨리다'도 마찬가지다.

이럴 땐 우리 맞춤법 규정이 '표준어=맞는 말, 비표준어=틀린 말'이라는 이분법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야속하기만 하다. 시에선 몰라도 일반 글에서는 '내음'을 '냄새'로 쓰는 수밖에 없다.

배상복 기자

▶ 자료제공 : 중앙일보 어문연구소▶ 홈페이지 : (https://www.joongang.co.kr/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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