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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성형미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최근 인터넷을 떠도는 인기 게시물의 하나가 '김태희의 일생'이다. 탤런트 김태희의 어린 시절부터 요즘까지를 담은 사이버 사진첩이다. 댓글들은 하나같이 김태희가 어려서부터 예쁜, 타고난 미인이라는 것을 칭찬하고 있다.

네티즌들이 열광하는 스타의 어린 시절 사진 비교도 비슷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미모의 스타들이 원래 예쁜 부류로 지지받는다. 한창 유행하는 '쌩얼(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도 유사한 논리다. '화장발' 없이 예뻐야 진짜라는 것이다.

이런 예들은 과도한 성형이나 화장 등 인위적 연출로 탄생하는 획일적 미에 대한 반감을 보여 준다. 성형미인이 늘면서 자연미의 희소성이 커졌다는 뜻도 된다. '짝퉁'의 시대, 오리지널에 대한 선호로도 보인다. 그렇다고 성형 자체가 터부시되는 것은 아니다. 미의 등급을 따질 때 성형미인보다 자연미인이 우월하다는 것이지 자연추녀가 낫다는 얘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성형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최근 많이 관대해졌다. 스타들은 성형 사실을 숨기기보다는 당당히 공개한다. 그쪽이 대중의 호감도 산다. 성형 자체를 문제삼기보다는 성형의 당위성이나 성공 여부가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일반인들도 성형 대열에 적극 합류했다.

물론 과도한 성형 열풍은 여전히 비판거리다. 외모 지상주의가 가져온 무분별한 육체 상업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몸이 최고의 가치이고 신체 이미지가 정체성의 핵심이 되는 시대에 불가피하다는 현실론도 나오고 있다. 성형을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으로 보려는 시각도 있다.

어느 쪽이 됐든 흥미로운 것은 성형을 사회적 현실로 인정하는 동시에, 타고난 아름다움에 더욱 집착하는 의식의 이중성이다. 평등을 내세우면서 귀족 혈통을 따지는 것 같은 모순이다. 노력이나 자기 연출보다는 생래적 미인이 더 월등하고, 부자도 자수성가형보다는 대를 물린 명문가 자제들이 더 적자 대접받는다. 성실한 노력가보다 방탕한 천재를 더 동경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TV 드라마나 영화들이 쏟아내는 영웅담들도 그렇다. 남다른 혈통으로 고귀하게 태어난 이들이 흙속에 묻혀 있다가 비범함을 발휘하는 얘기다. 후천적 노력보다는 하늘이 내린 천부적인 재능과 미모, 세습된 부와 권력이 우월하다는 것이다. 우리 내면에 숨어 있는 신분사회의 흔적이다. 겉으로는 질시하면서도 태생적 우월성을 선망하는 아이러니다. 어쩌면 우리 의식의 일부는 아직도 봉건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