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유안진 전래민요 모음집 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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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시인 유안진(62)씨가 30년 가까이 수집해온 2백9편의 전래 민요를 모은 모음집 '딸아 딸아 연지딸아'(문학동네)를 출간했다. 유씨는 지난해 출간한 산문집 '옛날 옛날에 오늘 오늘에' 등을 통해 동요 등 옛노래를 꾸준히 소개해왔지만, 동요와 부녀자들의 노래인 부요(婦謠), 남정네들의 노래인 속요(俗謠)만을 모아 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책은 부요를 모은 '시할아비 방구는 호령방구', 속요를 모은 '춘아 춘아 옥단춘아', 여아(女兒)들의 동요인 '새각시 방에 불을 혀고', 남아들의 동요인 '말 탄 신랑 꺼어떡' 등 4부로 구성돼 있다.

"시집갔던 사흘 만에/과거 본단 소문 듣고/과거 보러 가신 낭군/밤낮으로 기다리니/밤도 길어 해도 길어/길쌈이나 시작하네"('학수고대' 전문)같은 부요에서는 노래로 마음을 달래며 고통스럽게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청포대하 자신노요(靑袍帶下 紫腎怒)/총상고중 백학소요(紅裳袴中 白蛤笑)"('첫날밤 신랑 신부 노래' 전문)같은 속요는 낯 뜨거운 육담이다. "신랑의 푸른 도포 밑에 붉은 신이 잔뜩 성을 내오"라는 신랑의 선창에 "붉은 치마 아래 속곳바지 속에서 흰 조갑지가 방긋 웃고 있소"라고 신부가 답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유씨는 "전래 민요에서는 음양오행을 따지던 사고체계.가족구조.생활상 등이 드러난다. 또 마음에서 우러나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들은 사람이 자신의 신세타령을 추가해 살을 붙였다"며 "민요에 녹아 있는 조상들의 정서는 오늘날 풍요로운 삶의 기초가 되었는데도 너무 잊어버리고 살았다"고 말했다.

1975년부터 민요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뒤진 유씨는 29년간 70세 이상의 할아버지.할머니 2천여명을 만났다. 80년대 초 대구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기생들의 생활상과 노래를 자세히 들려줬다고 한다.

유씨는 "본인은 끝내 부인했지만 조선시대 기생 총괄 기관인 권번(券番)에서 동기(童妓) 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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