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된 억지력 보장을 성과라 하는 건 헛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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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나온 '확장된 억지력(extended deterrence)'을 놓고 한국 정부가 성과물로 내세우고 있으나 이는 한.미 동맹의 기존 원칙을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익명을 요구한 미 국방부 관리는 26일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2009년 10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한국에 이양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 정부는 이번 SCM에서 '확장된 억지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보장받았다고 하는데.

"셰익스피어의 희곡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에 비유할 만큼 말이 안 되는 얘기다. 확장된 억지력은 1953년 한.미 방위조약 체결 이래 미국이 줄곧 한국에 제공해 온 것이다.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그건 미국의 친구(한국)가 공격받으면 미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적을 격퇴한다는 뜻으로, 한.미 동맹의 기본 개념이다. 그걸 새로운 성과인양 얘기하는 건 헛소리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왜 그것을 성과라고 주장하나.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한국 정부는 (안보를 위해) 미국으로부터 무언가 새로운 걸 보장받았다고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이유는 지난해 SCM 공동성명에서 한국이 '핵우산' 표현을 빼자고 요구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걸 만회하려고 이번에 보다 강력하고 구체적인 보장을 받으려 했던 것 같다."

-지난해 SCM에서 한국이 정말 핵우산이란 용어를 빼자고 요구했나.

"그렇다. 당시 한국은 북한을 달래기 위해 핵우산이란 표현을 빼려고 한 것 같다. 그러나 미국으로선 절대 응할 수 없었다. 미국은 '한국이 정 그렇게 나오면 올해 SCM은 공동성명을 낼 수 없다'고 맞서 겨우 마무리지었다."

-"한.미 합참의장이 버웰 벨 연합사령관에게 핵우산 제공을 구체화하는 전략지침을 짜라고 지시했다"는 한국 측 발표가 사실과 다른 걸로 드러났는데.

"정말로 어이없는(totally ridiculous) 발언이었다. 미국의 핵우산 운용은 한미연합사의 소관사항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한국에 핵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다. 그런데 한국은 북한에 대해선 이렇다할 대응은 하지 않으면서 미국에만 왜 이런저런 요구를 하는지 모르겠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SCM에서 한국에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는데.

"한국 측은 'PSI의 필요성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이 사안은 청와대 결정사항이라며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한국이 참여한다면 PSI는 큰 성과를 거둘 것이다."

-SCM에서 전작권 이양시기는 2009년 10월~2012년 3월로 정해졌다. 한국은 이를 근거로 2012년에 이양받겠다는 입장인데.

"미국의 입장은 여전히 2009년 전작권 이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시기를 2009년 10월부터라고 명시한 것은 2009년 9월까지 이양 준비를 마친 다음 10월이 되면 바로 이양하겠다는 뜻이다. 한국은 전작권을 행사할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가능한 한 빨리 전작권 이양 문제를 매듭짓길 바라고 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한.미 양국의 국방장관이 매년 한 번 만나 주요 안보 현안에 대해 협의하는 기구(Security Consultative Meeting). 올해 제38차 SCM에서 윤광웅 장관과 도널드 럼즈펠드 장관은 미국이 핵우산을 계속 제공하며, 전시작전통제권을 2009년 10월~2012년 3월에 이양하기로 합의했다.

◆ 확장된 억지력=핵무기 보유국이 핵무기가 없는 우방에 핵 억지력을 제공해 가상 적국의 핵 공격으로부터 동맹국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으며, 일본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참여하는 서유럽 여러 나라도 미국의 핵에 의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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