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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준 "해방정국 최선의 선택"-박사명 교수, 정치외교사학회 세미나서 주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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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의 노선이 통합된 단일민족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재평가가 나와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있다.
박사명 교수(강원대)는 한국정치외교사학회 주최로 13일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릴 예정인「해방45주년기념 해방의 정치사적 인식에 관한 특별학술회의」에 발표할 논문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정치노선』에서 건준을 이같이 높이 평가했다.
건준은 여운형의 중도좌파계열에 안재홍을 중심으로 한 중도우파계열과 공산당계열까지 포괄한 연합정치조직으로 해방직후 미군 상륙전까지 한반도에서의 실질적인 정부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건준은 다양한 정파의 분산으로 조직이 와해되면서 좌우 모두로부터 비난을 받아 해방직후 정국에서의 중요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크게 평가를 받아오지 못했다.
우파쪽에서는 건준을 『공산혁명을 주장하며 신탁을 지지해 우리민족을 러시아의 노예로 만들려한다』고 비난했으며, 좌파쪽에서도 『계급적 기반이 모호한 주도세력이기에 민중의 혁명적 요구를 수용하지 못한다』고 비난했다.
박 교수는 이러한 평가들을 비판하면서 건준에 대한 올바른 분석을 위해 세 가지 기준을 분명히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해방정국에서의 일차적 과제는 통합되고 자주적인 민족국가건설이라는 점에서 통합 지향적 민족주의가 최우선의 기준이 되어야한다. 둘째, 여운형 개인의 사상과 노선보다 건준이라는 조직의 공식적 노선과 활동이 평가의 1차적 기준이 되어야한다. 셋째, 분단 4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남북의 양극화된 가치체계를 평가기준으로 삼기보다 해방당시의 가치기준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 같은 기준에서 볼 때 건준의 정치노선은 결과적으로 실패했으나 해방직후 혼란스런 복잡한 정치상황에서 통합된 민족국가형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였으며 현 시점의 남북통일논의에 있어서도 당시 건준의 진보적 민족주의는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건준의 정치·사회경제·대외전략 노선을 제시했다.
우선 건준은 정치적으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장했다. 이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을 결합한 중도 좌파적 노선으로 친일파를 제외한 노동자·농민·소시민·자본가·지주를 모두 포괄, 자본가와 지주를 배척했던 공산당이나 노동자·농민의 이익을 경시했던 한민당 계열의 분열성과 대조적으로 민족통일 전선에 의한 통일국가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건준은 사회경제적으로도 토지문제에 대해 유상몰수·무상분배를 주장했으며, 농업·중소상공업의 사유제와 주요상공업의 국유제를 지향하는 중도적 입장을 취했다.
건준은 또 대외전략 면에서도 친미·친소의 중립적 노선을 견지, 친미·반소의 우편향(한민당·이승만)이나 반미·친소의 좌편향(김일성·박헌영)에 의한 분단을 우려했다.
박 교수는 『이같은 건준의 통합적 구심력은 미소 양 점령국의 오도된 점령정책과 이에 편승한 특정정파의 이기주의에 의해 분열적 원심력이 되고 말았다』고 결론지었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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