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원짜리 배추와 농협(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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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배추ㆍ무값이 금값이다. 배추 한포기에 4천원,무도 큰 것 한개에 2천5백원은 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말할 것도 없이 무ㆍ배추는 우리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부식재료다. 아무리 반찬이 없어도 김치 한가지는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식생활이고 거기에는 빈부의 구별이 없다.
그 무ㆍ배추값이 한개ㆍ한포기당 3천,4천원을 한다는 것은 아무리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고는 해도 너무 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서민가계가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도 보통 걱정이 아니다. 그나마 소비자들의 부담이 농가의 소득으로 직결된다면 다소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농촌이 일손 부족과 노임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 위에 수입개방의 여파로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소비자의 부담으로 농가 가계수지가 개선될 수 있다면 이는 지역간ㆍ소득간ㆍ계층간 배분형평의 차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정은 정반대다. 농수산부 조사에 따르면 대도시에서 포기당 4천원하는 배추의 농가 출하가격은 불과 4백원 내외고 2천5백원짜리 무는 2백원 내외에 불과하다.
소비자가 부담하는 배추ㆍ무값의 불과 10%만이 농민의 손에 들어가고 나머지 90%는 중간유통상인들의 주머니를 불리고 있다는 얘기다. 생산농가와 소비자 모두 엄청난 피해자인 셈이다.
정부는 배추ㆍ무값 폭등에 대해 날씨탓을 하고 있는 모양이고 실제로 장마끝의 폭염이 여름채소에 해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산지가격과 소비자가격의 10배가 넘는 결과를 날씨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문제는 이같은 현상이 비단 무ㆍ배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며 올해에만 국한된 일도 아니라는 점이다. 채소류ㆍ양념,그리고 수산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농수산물이 연례행사처럼 교대로 파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리고 그같은 파동의 전말을 살펴보면 거의 예외없이 그 배경에 유통구조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같은 초보적인 문제에 한번도 발벗고 나선 적이 없다. 얼마전 대통령이 직접 농산물의 유통구조를 바로 잡으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있지만 농수산부가 고작 내놓은 것은 농협을 통해 밭떼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농협이 상인과 맞서 밭떼기에 나선다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일이지만 밭떼기를 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지 묻고 싶다.
우리가 보기에 농수산물의 유통구조문제 해결은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직거래체제 감구축을 통한 유통단계의 축소와 상하기 쉬운 농수산물의 특성에 맞춘 수송ㆍ저장시설의 구비,그리고 매장의 확보에 있다.
직거래체제의 구축에는 농협ㆍ수협 등 농어민 이익단체가 이 일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기도 하고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ㆍ수협이 신용사업 위주의 지금의 운영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협동출하와 소비지 판매까지 맡는 경제사업 중심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본다. 농ㆍ수협의 단위조합장이나 중앙회장이 직선제로 바뀌어 새로운 농민단체상을 정립해야 하는 시점에서 이 문제는 본격적으로 검토ㆍ추진해야 할 것이다.
내장시설을 갖춘 수송ㆍ저장시설의 구비와 매장의 확보는 막대한 예산이 드는 일인 만큼 정부의 과감한 투자가 수반돼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생산농민ㆍ소비자 모두를 위한 일인 만큼 과감한 결단이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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