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가을 저녁의 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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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가을 저녁의 시'- 김춘수(1922~2004)

누가 죽어 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롬 속에서

물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오 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신문지 맥없이 내려놓고 앉아 있으니 어깨를 툭 치는 감나무 잎. '이봐, 소식은 신문에만 있지 않지!' 새로운 소식이 배달된 셈이다. 가을은 죽음을 보여주는 계절.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을 생각해 본다. 감나무 잎 따라서 한 번 더 낮아진다.

<장석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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