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저녁의 시'- 김춘수(1922~2004)
누가 죽어 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롬 속에서
물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오 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신문지 맥없이 내려놓고 앉아 있으니 어깨를 툭 치는 감나무 잎. '이봐, 소식은 신문에만 있지 않지!' 새로운 소식이 배달된 셈이다. 가을은 죽음을 보여주는 계절.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을 생각해 본다. 감나무 잎 따라서 한 번 더 낮아진다.
<장석남.시인>장석남.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