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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산 미지수… 내각제 “흔들”/무더위속 잠수… 여권의 속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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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강행 부작용… 정권타격 위험 민자당/집권후반 권력누수등 우려 청와대/YS 「현행론」ㆍ공화계는 불만속 관망
3당합당의 전제로 당연시되던 민자당의 내각제개헌방침이 흔들리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합당후 일관되게 내각제에 소극적이었던 김영삼대표의 언동에서뿐 아니라 최근엔 민정계의 움직임과 청와대참모들의 분위기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김윤환 정무1장관은 4일 기자들과 만나 『내년 상반기중에 개헌여부의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말하고 『상반기의 개헌방향설정은 여야합의가 전제이며 합의가 없으면 개헌은 안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3당합당의 존립근거는 내각제개헌』이라고 공언해 왔던 박철언의원은 최근 『순수 내각제가 안되면 순수 대통령제,또는 현행헌법 유지의 가능성이 있다』고 후퇴기미를 보이고 있다.
현재 개헌에 대한 민자당의 공식입장은 지난달 24일 노태우대통령,김영삼대표,김종필ㆍ박태준 최고위원 등 4인이 청남대회동에서 밝힌 △지금은 내각제개헌 논의 시기가 아니다 △의회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민자당의 최근 기류변화는 내각제관철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일방적 개헌추진이 오히려 야권통합을 촉진해 민자당정권자체에 심각한 타격을 줄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출발하고 있다.
물론 이같은 분석은 합당당시와 크게 달라진 상황변화에 근거하고 있다. 즉 정국안정을 앞세운 합당명분이 계파암투등으로 현저히 쇠퇴했고 이로인해 당이미지가 실추한데다 내각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좀체로 높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6월 임시국회 이후 형성된 사퇴정국과 야권의 내각제=이원집정제=일당 독재라는 「폭로전략」이 내각제 추진환경을 현저히 저해하고 있다.
우선 개헌을 하려면 △국회의결(재적 3분의 2)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데 합당시점만해도 내각제에 신축적이던 김대중총재가 사퇴정국 이후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반대로 돌아서 이를 극복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내각제 지지여론이 현저히 높지 않은 상황에서 민자당이 다수의석으로 밀어 붙여 국회통과를 시키는 것 자체가 어려울 뿐 아니라 설사 통과시키더라도 과연 국민투표에서 집권당의 체면을 세울만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느냐는 문제와 개헌과정의 무리수로 국민감정이 악화되면 14대 총선을 실시해 봐야 일본 자민당식 정권재창출은 어려울 것이라는 삼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평민­민주­재야의 통합이 공고해져 △반민자당 공동투쟁전선이 형성되고 △김대중총재가 자연스럽게 투쟁의 구심점으로 부각되는 것은 김영삼대표를 비롯한 민자당의 어느 누구에게도 바람직스런 상황조성이 아니다.
청와대로서도 승산이 불확실한 내각제에 전력투구한다는 것은 노태우대통령의 집권후반기 레임덕현상을 가속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최근 별로 내각제관철을 적극 주관하지 않고 있다.
○…내각제가 이처럼 흔들리게 됨에 따라 민자당내 각 계파는 대응전략을 각기 재검토하고 있다.
민정계는 내각제추진이 포기돼 현행 대통령직선제로 가게되면 지역감정에 의한 극심한 소모적 정쟁이 재현되고 그로 인해 남북관계등 국가 대사를 그르칠지도 모른다는 점을 염려하고 있으며 특히 자파내에 마땅한 대권주자가 없다는 게 가장 큰 고민이다.
김영삼대표를 밀어 김대중총재와의 독점적인 경쟁구도를 추종하자니 생리적으로 거부감부터 생기고 새로운 「간판스타」를 만들어 내자니 재목이 없을 뿐아니라 상황이 여의치 않다.
박철언의원이 순수대통령제(대통령 임기4년에 중임허용ㆍ부통령제 도입) 개헌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은 이같은 난관을 헤쳐 김대중총재의 개헌주장을 물고들어가 양김구도를 뒤흔들려는 「제2정계 개편」의 시도가 깔려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럴 경우 노대통령의 의중이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됨은 물론이다.
김영삼대표는 내각제를 포기하고 현행 헌법대로 가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다고 보지만 이를 확실히 담보받기 위해서는 노대통령의 후계자지명과 민정계의원들의 지지가 필수적이라 이의 보완에 온 신경이 쏠려 있다.
김대표가 창당전당대회직후부터 계속해온 민정계 의원들과의 접촉은 자신이 계파대표가 아닌 민자당의 대권후보라는 인식을 은연중 심어주기 위한 것이지만 그 효과는 아직 미지수다.
노대통령은 최근 김대표에게 많은 권한과 신임을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양김 구도 현실화에 대한 우려,후반부 임기중 권력누수방지등에 대한 고려를 하고 있어 김대표로서는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
김대표는 또 김대중총재의 야권통합을 견제하고,이들을 장내로 끌어들이기 위한 지자제ㆍ보안법 등 정치법안의 「대담한」구상을 계획하면서 개헌정국으로의 진행을 늦추거나 생략하려는 전략이다.
김종필 최고위원의 공화계는 내각제하 권력분유의 꿈이 현실적으로 깨질 조짐이 보임에 따라 당황해 하면서도 홀로 이를 관철시킬 힘이 없어 노대통령과 두 김씨의 동향만을 살피고 있는 상태.
다만 김최고위원은 특유의 소신과 기다림의 미덕으로 흔들리지 않는 정책노선을 견지,범보수세력의 대표위치를 고수하면서 기회를 보겠다는 입장.
개헌문제는 어쨌든 내년 상반기중 결론이 나야 한다. 통치력 누수가 많아지는 대통령임기 후반기가 가까울수록 의원들을 통제하기가 어려운데다 내년말이나 내후년초의 총선일정 때문에 이를 더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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