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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줄끊기」 위험한 선택/이라크 송유관 봉쇄 가능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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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확실한 응징… 확전구실 우려/하루 3백70만배럴… 세가지 통로 수출/터키관 폐쇄검토 사우디서는 눈치만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에서 비롯된 중동위기가 이라크 송유관 폐쇄및 이라크 유조선에 대한 해상봉쇄여부를 둘러싸고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무력개입이 아닌 강력한 경제제재조치를 통해 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라크경제의 젖줄에 해당되는 석유수출을 완전차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게 서방각국의 일치된 분석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이라크산 석유에 대한 금수조치에 이어 송유관폐쇄및 해상봉쇄조치까지 취하게 될 경우 이는 자칫 이라크에 새로운 도발의 구실을 제공함으로써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는 데 선택의 어려움이 놓여있다.
서방의 전문가들은 일시적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는 이라크ㆍ쿠웨이트사태는 이라크에 대한 송유관폐쇄및 해상봉쇄 여부에 따라 화와 전의 새로운 갈림길에 들어서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서방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이라크 송유관 폐쇄의 논의배경과 문제점,앞으로의 전망 등을 알아본다.
◇이라크산 석유금수조치=미국에 이어 EC(유럽공동체) 12개국이 4일 로마에서 긴급회의를 갖고 이라크및 이라크통제하에 들어간 쿠웨이트산 석유에 대해 전면 엠바고(수입금지)조치를 결정했고 5일 일본도 이에 동참한다고 발표했다.
석유수출에 외화수입의 거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고,그 수출물량의 3분의2가량을 선진공업국에 공급하고 있는 이라크로서는 주요 선진국들의 이같은 금수조치로 상당한 경제적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그 효과를 최단시간내에 극대화함으로써 사태를 조기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라크 송유관을 폐쇄하고 유조선에 대한 해상봉쇄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 사태해결에 나서는 서방국들 사이에 강력히 제기되고 있고,실제 구체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송유관폐쇄및 해상봉쇄=현재 이라크의 하루 원유수출능력은 3백70만배럴로 이는 세가지 경로를 통하고 있다. 하나는 사우디아라비아 송유관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하루 1백60만배럴이 이 송유관을 통해 홍해의 얀부항에 있는 이라크 유조선터미널로 옮겨지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터키송유관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사우디송유관과 마찬가지로 하루 1백60만배럴이 지중해에 접하고 있는 터키의 세이한 터미널로 공급된다.
나머지 50만배럴은 페르시아만끝에 있는 이라크의 자체항구인 파오항을 통해 수출되고 있다. 이처럼 원유수출물량의 80%를 터키와 사우디등 외국에 설치된 송유관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조건을 고려할 때 송유관폐쇄는 이라크경제의 숨통을 죄는 데 더없이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가 이라크송유관을 폐쇄하는 「무모한 모험」은 할 수 없을 거라는 게 일반적 전망이다.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사우디로서 이라크에 훌륭한 개전이유를 제공할 경우 그에따른 엄청난 대가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비해 터키송유관 폐쇄는 현실적으로 선택가능한 방법으로 진지하게 검토되고 있다. 터키 스스로가 송유관 폐쇄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데다 만일 이를 이유로 이라크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인 터키에 대한 침공을 감행할 경우 이는 나토군의 즉각적 무력개입 명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사 터키송유관이 폐쇄되더라도 이라크는 사우디송유관과 자체항구,그리고 쿠웨이트의 석유수출물량만으로 하루 약4만배럴의 수출능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선진국의 금수조치와 함께 홍해나 페르시아만을 통과하는 이라크유조선에 대한 해상봉쇄문제가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해상선박 식별의 문제점과 함께 상선에 대한 무력공격이라는 국제법상의 미묘한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효과=현실적으로 선택 가능한 터키 송유관 폐쇄조치와 함께 주요선진국 모두가 이라크에 대한 석유금수조치에 참여하게 될 경우 이라크의 하류 원유수출물량을 현재의 약 5백만배럴(쿠웨이트 포함)에서 1백만∼1백50만배럴 수준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영국의 케임브리지 에너지연구소측은 내다보고 있다.
◇문제점=이라크송유관 폐쇄및 금수조치를 통해 이라크및 이라크 점령하에 있는 쿠웨이트의 석유수출물량을 지금보다 하루 약 4백만배럴정도 줄이게 될 경우 이는 즉각적으로 국제유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프랑스의 한 에너지연구소는 이럴 경우 즉각적으로 배럴당 4∼5달러의 국제유가 인상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울러 터키 송유관 폐쇄로 이라크가 터키를 침공,나토군이 개입하게 될 경우 이는 중동사태의 위기확산과 장기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망=석유를 통한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사우디나 아랍에미리트등 주변산유국의 동의와 협조가 필수적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라크에 대한 석유금수조치에 따른 유가인상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산유국의 생산증가가 절대적이다.
그러나 미국의 강력한 지원과 방위의지에도 불구하고 과연 사우디가 이라크의 비위를 거슬러가면서 증산에 협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서방의 많은 전문가들이 현 중동사태 해결의 가장 큰 열쇠는 결국 사우디가 쥐고 있다는 공통된 견해를 보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때문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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