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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I 참여 20일 안에 결정해야 하는데… 노 대통령 침묵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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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핵 문제 해법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 노무현(얼굴) 대통령에게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정식으로 참여하느냐 마느냐다. 사실상 시한은 11월 15일이다. 유엔회원국은 이날까지 안보리 제재위원회에 대북 제재 이행 계획을 보고해야 한다. 한국도 예외가 될 순 없다. 따라서 우리 정부의 PSI에 대한 입장도 여기에 반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안보리 결의에 북한 선박에 대한 해상검문 조항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핵물질 이전 방지를 물러설 수 없는 '레드라인(저지선)'으로 내건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PSI를 핵심 수단으로 꼽고 한국의 참여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19일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PSI 참여를 종용한 데 이어 20일에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공식 의제도 아닌 이 문제를 거론하며 압박을 가했을 정도다.

하지만 노 대통령으로선 쉽게 결정 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PSI 정식 참여가 북한의 반발을 부를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래 노 대통령은 PSI와 관련해 공식 언급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라이스 장관과의 면담(20일) 때도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 문제와 뭉뚱그려 "유엔 결의를 준거로 해 그 취지와 내용에 부합하도록 조치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청와대 참모들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PSI에 정식 참여한다고 선언할 경우 남북관계가 퇴보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구나 PSI 문제는 정치권의 논란까지 부르고 있다. 한나라당은 한.미 동맹을 들어 참여를 종용하는 반면,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절대로 PSI에 참여해선 안 된다. 안이한 공직자는 책임을 추궁하겠다"며 날 선 경고를 하고 있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도 20일 라이스 장관과의 회담에서 두 가지 이유를 들어 PSI 정식 참여가 어려운 사정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회담에 배석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 두 가지는 "국내에서 PSI 참여는 곧 남북 간의 긴장 고조로 이어진다고 과장되게 이해되고 있다"와 "정치권에서 반대가 있다"였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노 대통령으로선 PSI 참여와 관련해 참여하면 하는 대로, 참여하지 않으면 않는 대로 나라 안팎의 반발을 사야 하는 샌드위치 신세다. 참여 결정을 내릴 경우엔 열린우리당 등 진보층과 북한으로부터, 참여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릴 경우 한나라당 등 보수층과 미국으로부터의 공세를 감수해야 한다. 노 대통령이 최종 선택 시기를 미루며 장고를 거듭하는 이유다.

하지만 선택 시한이 다가오며 청와대와 외교안보 부처 일각에선 참여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외교부 내에 이런 현실론이 팽배하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PSI 참여 확대가 불가피하며, 참여해도 현재로선 특별히 문제될 게 없다는 쪽으로 의견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반면 통일부 등은 여전히 부정적인 의견에 기울어 있다. 한 관계자는"'PSI 참여'라는 용어만큼은 절대로 쓸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정부가 지난해 PSI 8개 항 중 '정식 참여' 등을 뺀 5개 항에 제한적으로 참여하는 논의를 할 당시 북한이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반발한 사례도 들고 있다.

이상언 기자

◆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대량살상무기(WMD)와 제조 기술의 국가 간 이전.운반을 막기 위해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국제 협력체계. 대량살상무기 등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항공기.화물선을 공해상이나 우방의 영해.영공에서 강제로 검문하거나 검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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