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알선 누명 쓴 여강사 '불륜 교수들' 덫에서 풀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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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방 사립대학에서 동양화를 가르치던 시간강사 이모(39.여)씨는 2004년 6월 같은 과 김모(47) 교수가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해 친구 정모씨를 불렀다. 이씨는 이혼녀인 정씨를 데리고 김 교수와 그의 동료인 또 다른 김모 교수가 기다리고 있던 약속장소로 갔다.

오전 2시까지 술을 마신 뒤 집이 서울인 이씨가 "시간이 너무 늦어 친구와 여관에서 자고 가겠다"고 하자 '동료' 김 교수는 "정씨와 잠시만 산책을 하겠다"고 했다. 이씨가 여관방을 잡으러 간 사이 교수와 정씨는 인근 노상에서 성관계를 가졌다. 이어 이씨를 초대한 김 교수도 친구 정씨와 함께 사라졌다.

이씨는 이튿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정씨로부터 두 교수와 연달아 성관계를 가졌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이후 두 교수는 이씨에게 "성관계 사실을 비밀로 하면 교수를 시켜주겠다"고 약속한 뒤 정씨를 다시 데려올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씨는 이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과 치료와 함께 '역류성 식도염'에 걸려 3개월간 치료를 받았다. 같은 해 11월 이씨는 자신이 두 교수를 계획적으로 함정에 빠뜨린 뒤 교수 자리를 요구했다는 소문을 다른 교수로부터 전해 듣고 억울한 나머지 사건의 전말을 적은 e-메일을 교수 4명에게 보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 교수는 이씨를 강요미수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혐의가 인정된 이씨는 올 6월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는 23일 원심을 깨고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가 교수가 되려고 김 교수 등을 협박하려 했다는 강요미수 혐의에 대해 "김 교수 등이 심리적으로 위축된 것은 스스로의 탓인 만큼 이씨가 성관계를 폭로하겠다며 협박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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