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최악으로 기록될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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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제38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는 한.미동맹이 어떤 지경에까지 왔는지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미국은 '핵우산 제공' 표현 문제를 놓고 "한국이 욕심을 부리고 있다"고 불만을 직설적으로 토로했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의 한국군 단독 행사 시기는 6시간이나 논란을 벌이다 '2009년 10월~2012년 3월'이라는 기형적인 형태로 봉합됐다.

특히 양국 국방장관의 회견장에선 눈 뜨고 보기 민망할 정도의 장면이 연출됐다. 윤광웅 장관이 "핵우산에 관해 예년보다 다른 내용이 나올 것"이라고 말하자 럼즈펠드 장관은 "오, 정말이냐"고 딴청을 피웠다. '김정일 위원장이 2차 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정보가 있다'는 윤 장관의 답변 대목에 미국 기자가 "김정일 말을 믿느냐"고 묻자 럼즈펠드 장관은 큰 웃음을 지었다. '확인도 하지 않고 그런 내용을 서둘러 발설하는 윤 장관의 속내를 알겠다'는 일종의 놀림으로 비친다. 윤 장관은 '한국의 국방장관'이 희화화(戱畵化)된 데 부끄러워해야 한다.

SCM은 한.미 군사동맹의 상징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정도의 불협화음이 난다면 이를 '동맹'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런 사태를 빚은 가장 큰 요인은 노무현 정부의 대미(對美)외교의 이중성이다. 이 정권은 '전작권은 당장 환수할 수 있다' '핵우산 조항을 삭제하자'는 등 미국에 떵떵거렸다. 그러나 막상 SCM이 열리자 '핵우산 표현 제공을 보다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태도를 돌변했다. 전작권도 '2009년에 갖고 가라'는 미국의 요청에 '그것은 곤란하다'고 저지선을 쳤다. 이런 오락가락에 미국의 '짜증'이 공개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그럼에도 국방당국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청와대와의 '코드 맞추기'에만 여념이 없고, 전작권 시기 확정에 대한 국민의 불안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윤 장관은 하루속히 물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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