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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북한의 핵실험 깊이 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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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를 포함한 세계 정세가 불안하다. 나라들끼리 정치.경제.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그물망처럼 연결된 세계화 시대에 핵무기 보유는 국가 생존 수단으로 과연 정당한가.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세계화 시대 핵무기 보유와 국가의 생존 전략에 대해 공부한다.

◆ 핵무기 보유는 북한에 독약=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목적은 체제와 정권을 유지하는 데에 있다. 북한 경제는 개인 소유가 인정되지 않는 사회주의 체제며, 정치는 김정일 위원장 일인을 떠받치는 독재 체제다. 이런 체제에서는 인권 문제가 발생하고, 경제의 효율성이 떨어져 발전이 어렵다.

외부 세계는 북한의 이러한 체제를 비판하지만 북한의 권력층 입장에서는 체제를 지키지 못하면 곧 붕괴를 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핵무기는 체제와 정권 유지의 보루가 될 수밖에 없다. 즉 미국 등 외부 세계의 간섭을 물리치고 국민의 단결심을 북돋워 내부 불만을 무마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 보유는 결국 북한에 독약이 된다. 주변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을 부추겨 동북아에서 군비 경쟁을 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도 더 많은 안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게다가 국제사회의 제재로 경제가 악화되므로 내부 불만이 쌓여 체제에 더 큰 부담이 된다.

북한 지도층도 이러한 사실을 알지만 당장 체제를 지켜내지 못하면 자신들이 위험해지므로 핵무기를 고집하는 것이다.

◆ 핵무기와 국가의 생존 전략 관계=오늘날 많은 나라가 서로 교류하며 사는데 왜 특정 국가들은 핵무기를 고집할까.

국가 관계에서 발생하는 국제정치 현상은 안보 문제 등의 고강도 정치와 경제 활동 등의 저강도 정치로 나눌 수 있다. 저강도 정치에서는 특정 국가의 주권이나 국경선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그러나 고강도 정치의 경우 주권과 국경선이 매우 중요하다. 국가들끼리 경쟁과 대결이 존재하고, 여기서 실수할 경우 나라 자체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는 고강도 국제정치의 상징인 안보 문제에서 핵심적으로 다뤄지는 대상이다. 예컨대 가난했던 중국은 1964년 핵실험을 성공시켜 강대국으로 발돋움했고, 그 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 됐다.

이런 의미에서 핵무기는 아직도 강대국의 상징이자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억제력의 상징이다. 하지만 국가 간 경제.문화.스포츠.안전 교류 등이 활발해지며 오늘날 국경선은 과거보다 중요성이 덜해졌다. 이에 따라 고강도 정치 수단으로서의 핵무기 효과도 감소했다.

그럼에도 모든 나라들의 사정이 같지 않으므로 핵무기에 대한 평가도 제 각각일 수밖에 없다.

이슬람 국가들과 대치하는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생존 수단으로 여기고, 강대국으로 부상하려는 인도의 경우 핵무기를 강대국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인도와 세 차례 전쟁에서 졌던 파키스탄은 핵무기가 안보 수단이지만'이스라엘에 대항하는 이슬람의 핵폭탄'이라는 자부심도 가진다.

◆ 우리의 선택=우리나라는 핵무기를 만들 기술과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핵무기가 없는 한반도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1992년 남북한이 비핵화 공동 선언을 했다.

북한은 이를 무시해버렸다. 여기에 맞서 우리도 핵무기 개발을 추진할 경우 농축 시설이나 재처리 시설을 건설해 북한보다 더 우수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핵을 보유하려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야 하고, 북한처럼 국제사회의 견제를 받아 고립된다. 따라서 핵 무장은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고집하며 우리를 계속 위협한다면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우 바람직한 선택은 우선 한.미동맹이 제공하는 핵우산과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 제재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국제 교류를 유지하며 북한의 핵 위협을 막을 수 있어서다.

미국도 우리에게 확실한 핵우산을 약속해 안전을 보장하는 일은 그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핵 강국들이 비핵국가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으면 너도나도 핵무기 개발에 나설 것이다.

그러나 먼 안목에서 보면 외부 세력에 안보를 의존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대북 억제력을 키우는 것이 최선이다. 굳이 핵무기를 만들지 않더라도 첨단 재래 무기를 잘 활용하면 된다. 우수한 잠수함을 만들어 보복 무기를 탑재하거나 지하를 뚫고 들어가 터지는 폭탄을 보유하는 방법도 북한의 도발 심리 억제에 효과적이다. 조기 경보 능력과 정보 능력을 강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 인류 공동 번영과 핵무기=핵무기는 피해가 특정 국가에만 미치지 않으므로 어느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인류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NPT는 5대 핵 강국에 한해 핵 보유 특권을 인정하지만 "핵 강국도 비핵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핵무기를 줄여나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비핵세계를 구현하려면 모든 나라가 노력해야 한다.

강대국은 국제 질서 유지와 핵 전쟁 억지 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비핵국가들의 핵 보유 의지를 부추기므로 핵 군축에 더욱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비핵국가들도 핵 보유 욕구를 자제하고 핵 질서 유지에 협력해야 한다.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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