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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 작가 바스키아, 그 수수께끼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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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리처드 마샬이 바스키아의 ‘무제(타르와 깃털)’ 앞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낙서 같은 그림에 새 깃털을 붙인 것으로 바스키아의 대표작 중 하나다. 김성룡 기자

"모두 그의 드라마 같은 삶에만 관심 있어 해요. 예술은 뒷전이죠. 제가 아는 한, 그는 현대미술의 '톱10'에 드는 작가입니다."

스무 살 뉴욕 화단에 혜성같이 등장해 스물여덟 짧은 생을 마감한 화가 장-미셸 바스키아(1960~88). 길거리 화가의 갑작스런 출세, 앤디 워홀과 우정 이상의 관계,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마약…. 숱한 화제 속에 정작 그의 작품성은 그늘에 파묻혔다. 그 8년의 궤적을 엿볼 수 있는 '바스키아'전이 서울 국제갤러리(다음달 12일까지, 02-735-8449)에서 열리고 있다. 만화 캐릭터를 차용한 낙서, 버려진 문짝에 그린 유화, 찢어진 종이를 구겨 붙인 콜라주 등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 27점이 나왔다.

바스키아를 가까이서 지켜본 리처드 마샬이 한국에 왔다. 휘트니미술관.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24년간 큐레이터로 일했던 그는 4년 전부터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현재 바스키아재단 이사도 맡고 있다.

-바스키아의 첫인상이 궁금하다.

"스무 살 무렵, 뉴욕 소식지인 '빌리지 보이스'에 그래피티 화가로 소개돼 유명세를 탔을 때였다. 젊은작가 그룹전을 기획하던 중 그를 만나러 갔다. 소호의 허름한 지하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말을 아주 잘하는, 즐거운 청년이었다."

마샬은 이듬해 휘트니미술관의 젊은작가 그룹전에 바스키아의 작품을 몇 점 내놓았다. 지금은 유명작가가 된 키스 헤링.리처드 프린스도 출품했다.

-버려진 궤짝, 문, 쇠기둥으로 작업한 이유가 있을까.

"그는 중산층 집안의 반항아였다. 항상 기존의 틀을 깨고 싶어했다. 좋은 스튜디오도 마다하고, 거친 소재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자신을 꾸미는 데도 열심이었다. 아르마니 바지를 입고 작업해 적잖이 놀란 적도 있다. (웃음)"

-그림에 흑인.왕관이 자주 등장한다.

"1980년대 뉴욕은 보수적인 사회였다. 흑인이 그림에 등장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유색인종이라는 걸 자랑스러워 했다. 유색인종의 얼굴에 왕관을 씌워 존경을 표시했다. 마이너리티를 주류사회에 당당히 드러냈고, 이후 많은 논란과 관심을 일으켰다."

-바스키아를 높게 평가하는데….

"자유분방한 선, 강렬한 색감 등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새로워 보인다. 그가 저평가된 게 안타까워 92년 휘트니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뉴욕타임스에서 집중 조명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바스키아가 지금 살아있다면.

"영화.비디오 등으로 영역을 확대했을 것이다. 아이디어도, 욕심도 많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는 소중한 천재를 하나 잃고 사는 셈이다."

박지영 기자 <nazang@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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