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구명의 존엄성/세계기독교의사회의 뇌사 인정 선언(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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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심장이 고동을 멈추고 호흡이 정지하는 것으로 우리는 이제까지 여겨왔다. 그러나 끝없이 발달되고 있는 첨단기술은 「뇌사」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출해냄으로써 삶과 죽음의 구분에까지도 까다로운 문제를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뇌의 기능은 이미 정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공호흡기등 종말의료기술의 개발로 상당시간동안 심장작동과 호흡을 계속시킬 수 있게돼 실제적인 죽음과 외형적인 죽음 사이에 시차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인위적인 죽음 연기는 물론 인도적인 의도에서 시작됐겠지만 최근엔 첨단의료기술의 발달로 장기이식이 가능해짐에 따라 사자의 장기 선도유지를 위한 방법으로 활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인도주의적 측면과 관습ㆍ종교ㆍ윤리적 관점에서의 견해 차이 때문에 뇌사 인정은 국가에 따라 상이한 규정을 갖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법적으로 뇌사를 인정치 않고 있으며,뇌사자로부터의 장기이식을 시도했던 의사가 형사입건된 사례도 있다.
따라서 최근 서울에서 열린 세계기독교의사회가 뇌사를 인정키로 한 것은 이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이견을 조정과 해소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의는 「의식이 없어지고 영이 떠난 육신만의 생명을 언제까지나 연장시키려는 노력에 대해 반대한다」고 기독교 의료윤리강령에서 밝힘으로써 뇌사 인정 입장을 분명히했다.
이러한 결정이 우리 의학계의 뇌사문제 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미 한 인간으로서의 생명이 상실된 인체의 장기 일부를 떼내어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살아있는 다른 사람에게 이식시킴으로써 한 생명을 구하고 연장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의료윤리상으로는 당연히 용납되고 장려돼야 할 사안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신체가 일종의 부품으로 이용된다는 것이 생명윤리의 존엄성에 비추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의견도 강하다.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장기이식에 대한 엄격한 규정과 규제가 함께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뇌사여부를 판정하는 데는 엄정한 객관적 기준과 검증이 수반돼야 한다. 이 단계에서 장기이식수술에 직접 관여하는 의사는 일체 배제되는 것이 선진국의 관례다. 장기의 제공자와 이를 제공받는 자 양측 사이에 금품이 거래되는 것이 용납돼서도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존중되고 우선돼야 할 사항은 뇌사자 본인이 사전 유언이나 허락이 없으면 안되도록 해야 한다. 뇌사 인정을 논의하기에 앞서 이런 전제들이 함께 다뤄진다면 본질문제 자체의 결론 도출이 한층 쉽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도 교통사고를 비롯해 각종 사고의 증가로 뇌사문제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고,법적ㆍ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관련학계와 정부및 종교ㆍ사회단체들이 활발한 논의를 전개해야 할 필요는 더이상 늦출 수 없는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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