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장서 거간 노릇 하는 "세계적 장인"|알토 색서폰 재즈 연주자 강태환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재즈 외길 30년.
알토 색서폰의 달인 강태환씨 (46)를 아는 사람은 참으로 궁색한 재즈계 식구들뿐이다. 그러나 그들 세계는 알아준다, 정명훈씨, 강수연양 등과 나란히 강씨는 한국이 낳은 또 한 사람의 세계적인 장인이다.
아직도 재즈 학도에 불과한 제가 뭘…하는 것은 그의 겸손이고 세계의 재즈계는 그를 l급의 뮤지션인 영국의 에반파커, 일본의 다카다 미도리 등과 같은 반열에 올려 놓은지 오래다.

<1급 뮤지션 인정>
일본의 저명한 재즈 평론가 소에지마 데무토는 「강태환의 호흡이 긴 연주 기법은 한국의 감성을 소리에 담아 세계화한 동양형 재즈라는 새 장을 열었다」격찬한다.
이 세계적인 연주자가 남대문 시장에서 여자용 액세서리 거간꾼으로 뛰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재즈 연주만으론 생활이 어렵기 때문이다.
액세서리 공장에서 물건을 받아 시장 안에 산재한 액세서리 가게·좌판 등에 대주고 수수료를 챙기는게 그가 하는 일이다.
재즈 불모지 한국에서의 서글픈 대접일텐데, 그의 말은 매우 의외다.
「설사 재즈만으로 넉넉한 생활이 가능했어도 나는 다른 생업을 가졌을 거예요. 재즈란 생활에서, 그것도 고달픈 생활 가운데서 우러나오는 음악이죠. 힘은 드나 노동 속에는 즉흥이 있고 노동 뒤끝에는 신명이 나죠. 이게 재즈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일상과 유리된 재즈는 화석화하기 십상이죠」

<기존 형식서 탈피>
남대문 시장에서의 일은 좋은 재즈를 만들기 위한 필요 요소며 「시장 일을 하는 세계적인 뮤지션」식의 시각은 오히려 이상하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강씨는 재즈, 특히 프리 뮤직에 미쳐 있다.
기존의 형식을 벗어나 가능한 모든 자유스러운 표현을 추구하는 프리 뮤직은 전위 음악의 하나로만 치부되었으나 강씨를 만나면서부터 국내에서도 고유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60년대 미국의 프리 재즈가 그의 음악의 원류라고 하나 그의 독창적 테크닉과 동양적인 표현 이미지는 재즈라는 이름을 무색케 할 정도다.
서양에서 프리 재즈는 첨단의 현대음악으로 극도의 표현주의, 민속 음악적 요소의 전면 수용, 화성 체계를 부정하는 무조 음악 등을 특징으로 하지요. 특히 각각의 아티스트들이 나름대로 수렴, 개발한 민속 음악적 요소들이 큰 발전을 하고 있어 단순히 재즈 음악의 한가지로만 분류하기엔 무리가 있어요. 프리 뮤직에서 우리 고유의 음악체 계를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 가락을 연상>
그의 말대로 강씨의 재즈는 느린 가락이 부드럽게 어울려 마치 우리의 아악인 수제천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그는 한국의 고유 정서를 담아내기 위해 독특한 연주 자세를 취한다,
오키스트라 지휘자용과 비슷한 단상 위에 양반 자세로 앉고 알토 색서폰의 아래 둥글게 튀어나온 부분을 바닥에 댄 것이 마치 장죽을 문채 상념에 잠긴 한국의 노인 형상이다.
한국적인 자세에서 한국적인 프리 뮤직이 나온다고 할까. 그는 이 자세로 코로 숨을 계속 들이쉬면서 오랫동안 음이 끊기지 않게 하는 순환 호흡 연주, 단선 악기인 색서폰에서 동시에 3∼4가지 음을 내는 방법, 특수리드를 사용한 소리의 변조 등 마술에 가까운 테크닉을 구사하고 있다.
국민학교 시절 클라리넷을 시작, 서울 예고에서 알토 색서폰 재즈 연주로 전향해 클래식을 고집하는 고교를 중단했다.

<일본서 순회 공연>
따라서 재즈를 안 가르치는 대학 진학은 자동으로 포기했고 여러 밴드에서 모던 재즈를 연주했다.
78년 자신이 리더가 되어 최선배·김대환씨와 강태환 트리오를 조직, 공간 사랑에서 정기적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85년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첫 일본 공연을 가졌으며 87. 88년에는 강태환 트리오 단독으로 일본 순회 공연을 성공리에 끝냈다.
그는 88년5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서독 무어즈 재즈 페스티벌에 초청됐고 프랑스에 거주하는 거불 연주인 오키 이타루와 듀엣 연주를 한 바도 있다.
그의 연주 활동을 담은 음반, 30년만의 첫 음반이 최근 예음사에서 출반 됐으나 정작 호응은 일본 유럽 등지에서 입고 있는 것이 한국 재즈의 현주소다.
재즈가 현대팝의 모태라는 점에서, 그의 음악이 철저히 한국 사상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강씨는 주목받아야 하고, 또 대접받아야 한다. 글 채규진 기자 사진 조용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