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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선수·관계자에 토토는 지뢰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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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자신이 출전한 경기의 스포츠토토를 산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양경민이 한국농구연맹(KBL)으로부터 36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KBL은 리그 사상 두 번째로 큰 중징계로 일벌백계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미리 막을 수도 있었기에 아쉽기도 하다.

프로스포츠에서 스포츠복권은 일종의 지뢰밭이다. 남들은 가지 못하는 곳이어서 도토리가 많다. 경기의 승패에 관여할 수 있는 선수나 심판, 구단관계자는 폭탄의 위험을 알면서도 지뢰밭에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만약 지뢰가 터진다면 밟은 사람뿐 아니라 종목 전체에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승부 조작이 있다면 그건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쇼라는 사실이 알려진 후 프로레슬링은 존재 자체가 미미해질 정도로 사라졌다. 승부 조작 후 이탈리아 사람들은 프로축구에 관심을 덜 기울인다. 올해 세리에 A의 수입이 25% 정도 줄었다. 1919년 일부 선수들이 승부를 조작한 미국 프로야구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아직도 공공연히 '블랙삭스'로 폄하된다.

그러나 KBL은 이 위험한 지뢰밭에 철조망을 쳐 놓지 않았다. 선수나 심판, 구단관계자들이 토토를 했을 경우에 대한 제재조항이 없다. 이번 제재는 'KBL의 명예나 품위를 손상시켰을 경우'라는 조항을 적용해야 했다.

KBL은 "신인 선수 오리엔테이션에서 토토를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국민체육진흥법에 금지돼 있어 별도의 조항을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경민은 "벌금 100만원을 내고 유죄를 인정하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던 것이다.

국민체육진흥법에 규정된 500만원 정도의 벌금은 연봉을 수억원씩 받는 프로농구 선수들이 눈 깜짝하지 않을 액수다. KBL이 자체 규정을 만들어 절대 안 된다는 경고를 해야 한다. '위험' 표지판만 있는 것과 철조망까지 쳐놓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지금도 몰래 지뢰밭에 들어가는 선수가 있을지 모른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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