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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신문 대기자 후나바시가 본 '한반도 2차 핵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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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반도의 2차 핵위기는 북한 체제와 정체성의 위기, 세계적 핵 확산 위기,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상호 불신이 뒤섞인 복합적 위기다." 일본 아사히신문의 칼럼니스트 후나바시 요이치로(船橋洋一.61) 편집위원이 20일 출간한 '더 페닌슐러 퀘스천(The Peninsular Question.한반도 문제)' (부제:한반도 제2차 핵위기)에서 내린 결론이다. 후나바시 위원은 2002년 북한의 우라늄 농축 핵개발 시인에서 촉발된 핵위기, 5차에 걸친 6자회담의 전말, 그 과정에 벌어진 숨가쁜 협상과정을 750쪽에 이르는 분량으로 생생히 그려냈다. 이를 위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이종석 통일부 장관 등 한국 정부 인사 39명과 미국 측 50여 명, 일본 60여 명, 러시아 20여 명, 중국 10여 명을 인터뷰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 요약.

◆ 공동성명 채택과 동시에 시작된 표류="이번에 채택된 6자회담 공동성명이 북한의 시스템(체제).인권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면 안 된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

2005년 9월 19일, 베이징(北京)의 제4차 6자회담 폐막식장. 6자회담에서 사상 첫 합의한 공동성명을 의장국인 중국의 우다웨이(武大偉) 대표가 읽자 참석자 전원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이어 TV카메라를 포함한 취재진이 퇴장했다. 문제는 미국 측 수석대표인 힐 차관보가 미국 측의 폐막 성명을 읽어내려가면서 시작됐다. 힐 차관보가 성명을 읽자 회담장 분위기는 싸늘해지고 참석자들의 얼굴은 굳어졌다. 발언 가운데 '시스템' 관련 부분은 북한이 '정권 교체(regime change)'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었다. 성명을 읽기 전 힐 차관보 본인이 "왜 이런 말까지 해야 되나, 심하군, 심해"라고 장내에 다 들릴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릴 정도였다. '시스템'이란 표현은 한국.일본이 폐막 성명에 앞서 사전 조율하던 때도 없었던 표현이었다. 워싱턴이 막판에 급히 끼워 넣은 표현이었다.

힐의 다음 발언 차례는 김계관 북한 대표(외무성 부상). 잔뜩 화가 난 김은 미리 준비했던 폐막 성명을 가방에 집어넣고 즉흥적으로 발언했다. "방금 힐 대사의 발언을 듣고 있자니 산 넘어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북한은 외무성 명의로 "경수로 제공 이전에 조선이 핵 억지력을 포기하는 일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는 강경한 성명을 냈다. 미국 대표단이 아직 워싱턴으로 출발도 하지 않은 시점에 나온 성명이었다.

중국은 미국의 폐막 성명이 북한의 외무성 성명을 촉발시켰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미국 대표단 중에서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마지막 단계에서 '평화공존' 등의 문구를 놓고 세 시간이나 허비했다. 그보다는 워싱턴에서 그런 폐막 성명을 내보내지 않도록 의견 조정을 했어야 했다"고 토로하는 사람도 있었다.

◆ 2003년부터 벼른 금융 제재 =2005년 11월에 열린 5차 6자회담의 최대 이슈는 미국의 대북 금융 제재였다. 미국은 이미 9월부터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에서 김정일의 비자금 2400만 달러를 동결시킨 상태였다. 김계관 북한 대표는 "금융은 피와 같다. 이것을 멈추면 심장도 멎는다"고 표현했다. 일본 대표단 중 한 사람은 "절규와 같이 들렸다. 북한이 진짜 약한 모습을 보인 첫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미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북한에 위조 달러와 불법 자금 세탁 의혹 카드를 제기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2003년 8월 1차 6자회담 때 미국은 중국과의 양자 협의에서 처음으로 북한의 자금 세탁 문제를 제기했다. 중국의 4대 국유상업은행 중 하나인 중국은행(BOC)의 자금 세탁 개입에 대해서도 분명히 지적했다. 상세한 브리핑이 거듭되는 동안 중국 측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

중국 정부는 독자적으로 BDA를 조사해 북한이 개설한 이 은행 계좌가 북한의 자금 세탁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05년 12월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선양(沈陽)에서 북한의 김계관을 비밀리에 회동할 때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관계자와 동행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부시 행정부는 2003년 위조 지폐, 가짜 담배, 가짜 기관총 밀매 등 북한의 불법 활동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의 주요 부처가 참가한 특별팀인 '북한 불법 활동 이니셔티브(IAI)'팀을 발족시켰다. 미국은 불법 활동을 통한 북한의 외화 수입이 전체 무역량의 35~40%인 연간 5억 달러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또 1999~2001년 이뤄진 한국 현대그룹의 대북 헌금과 남북 정상회담 송금(5억 달러)도 고농축우라늄(HEU)용 부품 조달 시기와 겹친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다.

◆ CIA가 북한.파키스탄 암호 해독=미국의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1998~99년 북한에 P1, P2 두 종류의 원심분리기 20기를 팔았다. 모두 실험용이었다. 클린턴 정권도 뒤늦게 이를 파악했다. 북한이 조달한 강화알루미늄관의 두께는 268㎜였다. 점차 원심분리기의 조달 규모가 커졌다. 미국 정보 당국은 독일 기업이 3000~4000기의 원심분리기를 제작할 수 있는 특수 알루미늄을 북한에 팔았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부시 행정부는 2002년 봄부터 중앙정보국(CIA)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를 발족, 파키스탄과 북한 사이의 핵 커넥션 정보를 본격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무선통신 도청 과정에서 "버찌 20상자를 주문한다" "버찌 20상자가 도착했다" 등 양국에서 오간 대화를 포착했다. 미국은 '버찌'가 원심분리기라고 해독했다. 당시 미국이 파악했던 정보는 매우 구체적이다.

◆ 한.미, 잠재적 위협국 놓고 의견 충돌=2004년 봄, 한.미 국방 당국은 동아시아 안보 과제에 대한 공통 인식을 갖기 위해 비공개적으로 '포괄적 안전보장평가(CSA)'를 작성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과 중국에 대한 평가를 놓고 정면 대립한 일이 있다.

한국은 중국이 장래 일으킬 수 있는 안보상의 위협을 적시하자는 미국 측 초안을 거부했다. 미국은 일본이 장래 미칠 수 있는 불안정 요인을 명기하자는 한국 초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양보하지 않았다. 한국 안은 일본을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한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미국 측은 "중국이 한국의 인접국이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건 이해한다. 그 부분을 빼자. 그러나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이며 미국으로서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공동문서에 넣을 성질의 것이 아니다"고 했다. 결국 공동문서에는 그런 부분이 빠졌다.

(※이 부분은 "한국이 미국과의 안보 협의에서 일본을 '가상 적국'으로 표기하자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정몽준 의원의 최근 발언과 일치한다.)

◆ 실패로 끝난 친서 작전=노무현 정권 출범 직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새 정부의 외교정책 기조를 논의했다. 그 핵심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북 군사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하는 대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 포기를 약속하는 이른바 상호 양보를 모색한다는 구상이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부시 대통령으로 하여금 김 위원장 앞으로 친서를 보내게 한다는 '친서 작전'이 제기됐다.

노 정권 출범 직후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이 방안을 은밀히 미측에 타진했다. 미국 측에서도 관심을 표시하는 사람이 있었고, 초안까지 만들어졌다. 김 위원장의 직함을 놓고 실무자 선에서 고민도 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 지도자'란 호칭은 국가를 인정하는 것이어서 곤란했고 '친애하는 미스터 김정일'도 마땅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수뇌부가 친서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 결국 '결정 보류 상태'로 끝났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 후나바시 요이치=아사히(朝日)신문 칼럼니스트이며 일본 언론계의 대표적인 외교 전문가다. 1980~90년대 아사히신문의 베이징.워싱턴 특파원과 워싱턴 총국장 등을 지냈다. 미.일 외교의 내막을 파헤친 '동맹 표류(同盟漂流)' 등 10권의 저서를 펴냈다. 일본 기자상(94년), 제8회 아시아.태평양상 대상, 신초(新潮)학예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게이오(慶應)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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