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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A 대북 금융제재, 그 심각한 충격 얼마나 컸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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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對) 북한 송금은 주로 중국계 은행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간다. 따라서 일본과 중국이 미국에 동조해 금융제재를 가할 경우 북한의 돈줄은 문자 그대로 고사할 형국이다.

2005년 8월21일, 미국 동부 뉴저지주에 있는 도박도시 애틀랜틱시티의 해안에 '로열참'이라는 유람선이 한 척 떴다. 약 90명이 승선해 호화판 결혼식을 거행하기 위해서였다.

가짜 결혼식이었다. 미 연방수사국(FBI) 오래전부터 기획한 달러 위조범을 일망타진을 위하여 가짜 마피아의 가짜 딸이 거행하는 가짜 결혼식이었던 것이다. 달러 위조범들은 미리 쳐둔 그물망에 걸려 일망타진됐다.

몽땅 잡힌 범인들의 입에서 나온 가장 귀중한 정보는 가짜 달러가 세탁돼 송금되는 은행이 어디인가였다. 그곳은 다름 아닌 아시아의 애틀랜틱시티라고 해도 무방할 도박도시 마카오였다. BDA(Banco Delta Asia)-. 일반인이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은행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된 연유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미 연방정부는 이로써 미국 은행들의 BDA와의 거래를 중시하고, BDA의 북한 관련 거래 중지를 마카오 정부에 요구한다. 지금도 기억에 선한 지난해 9월의 이야기이다.

BDA와의 거래 정지는 엄격히 말해 금융제재가 아니다. 공청회를 통해 이 은행이 좀 이상하니 미국의 은행들은 정부에 협조하고 자숙해 주었으며 좋겠다는 정도의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 본격적인 금융제재에 비하면 준비체조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지금까지 발동한 공식적 금융제재는 리비아 등을 상대로 한 4건밖에 없다.

*** 떡값의 기억

금융제재가 북한에 얼마나 치명적인 것이기에 북한은 그토록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 더 정확히 말해 금융제재는 김정일에게 얼마나 치명적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한 나라가 아니라 정부.사회단체 등으로부터 도전받는 한 재벌기업이라고 가상해 보자. 그 총수가 재벌이라는 체제, 그리고 그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담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참모진의 충성이다. 이 충성을 담보하는 것은 이념이라거나 애국심 등이 아니라 오직 돈이다. 군.당.경찰 등 중심간부들의 생활을 보장하고, 그들의 벤츠를 굴리고, 그들의 자녀를 유럽에 유학 보내기 위한 돈이다. 결국 이 체제는 떡값의, 떡값에 의한, 떣값을 위한 체제인 것이다.

대단히 엉뚱한 이야기도 아니다. '선진국을 눈앞에 둔' 대한민국에서도 대통령의 어마어마한 떡값이 사과상자에 들어있지 않았던가? 북한의 선군정치(先軍政治)란 떡값이 쿠데타의 물리력을 가진 군 수뇌부에 먼저 가야 한다는 말의 어려운 표현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떡값의 재원이 끊기게 된 것이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에서 있었던 한 세미나에서 미 재무차관 스튜어트 리비는 BDA에 대한 북한 거래정지가 효과가 있으며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북한의 변화이며 따라서 현재의 제재로는 아직 만족할 수 없다'고 공언했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의 이러한 강공 속에서 일본.베트남.몽골.싱가포르 등 전 세계의 약 20개 금융기관이 북한과의 거래를 자발적으로 정지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중국마저 이 대열에 가세하니 얼마나 충격이 컸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BDA를 통한 압박이 북한에 가져온 유동성의 정지액은 2,400만 달러에 이른다. 게다가 다른 은행들의 제재 동참으로 앞으로 김정일이 겪을 돈줄의 고갈은 훨씬 더 클 것이 뻔하다. 주먹구구의 어림셈으로 북한과 거래를 정지한 20개 금융기관의 북한 거래액이 BDA와 비슷한 규모라고 가정한다면 약 5억 달러의 유동성이 동결되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연간예산 약 30억 달러의 15%를 웃도는 규모다.

최근 일본의 보도에 따르면 조총련이 북한에 송금한 돈이 3,000억 엔, 약 25억 달러다. 이러한 송금은 주로 중국계 은행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간다. 따라서 일본과 중국이 미국에 동조해 금융제재를 가할 경우 북한의 돈줄은 문자 그대로 고사할 형국인 것이다. 더구나 해외에 있는 김정일의 금융자산이 43억 ̄50억 달러라는 어느 일본 보도를 놓고 보면 미국이 주도하는 금융제재는 북한의 떡값정치체제를 붕괴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2005년 6월29일, 미 대통령 부시가 취한 행정명령 13382. 이는 대량학살무기의 확산 방지에 위반되는 행위나 이를 방조하는 융자나 금융지원에 대해 재무장관으로 하여금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이미 논란의 대상이 돼 왔던 중국 기업과 금융기관의 위법행위를 다스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었다.

실제로 2005년 초에 있었던 미중경제안보심의회(USCC) 공청회에서 미 정부 관계자는 중국의 수뇌부가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분명히 인식했다"고 증언했다. 특히 중국의 외환은행 격인 중국은행의 미국 내 자산동결이라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이는 일본이 대미 개전을 촉발시켰던 1941년 7월의 미국 내 일본 자산 동결과 유사한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미 금융제재라는 판도라 상자

뉴욕증시에 중국기업이 상장하는 등 미국 내에 엄청난 자산을 가지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약점도 있다. 이란과는 상하이(上海)협력기구를 통해 협조의 폭을 넓히고, 특히 천연가스의 가장 큰 공급원인 터다. 지난 7월에 있었던 북한의 미사일 발사도 사실은 이란이 무기 구입 손님으로 온 것이고, 이를 묵인한 것도 중국이라는 관측이 있을 정도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운영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미국이 점점 더 강경해지는 마당에, 그리고 그 금융제재가 중국의 발등을 찍을 도끼가 될 수 있는 마당에 중국이 취할 가장 첫 번째 행동은 아예 그 동네싸움에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일 게다.

지난 1월17일 김정일이 기차를 타고 베이징(北京)으로 달려가 '미국의 금융제재로 우리 체제는 무너질지 모른다'는 고충을 털어놓았을 때, 북한과는 피를 나눈 입술과 이빨 같은 관계라는 중국의 수뇌부는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2005년 9월의 6자회담에서 북한이 원칙적으로 핵을 버린다는 입장을 밝히도록 한 것도 중국의 '작업' 아니었던가?

자존심을 버리고 중국의 수뇌부에게마저 한 부탁이 거절당했을 때, 금융제재 가능성이 겨울의 어둠처럼 시시각각으로 짙어갈 때, 그리하여 체제의 안존을 담보할 떡값이 끊겨져 나갈 때, 그리고 멋있게 발표한 선군정치며 하는 구호들이 위조지폐니 마약이니 심지어 가짜담배니 하는 말들로 해외에서 넝마처럼 모독될 때 김정일은 먼 고뇌의 뒤안길에서 돌아온 누님처럼 거울 앞에 서서 모진 마음을 먹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마음은 겉은 멀쩡했어도 패닉(공황)이요, 파라노이아(과대망상)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핵실험이라는 폭탄을 세계 언론에 던질 때 실타래처럼 엉킨 사태가 한 번에 해결되고, 부시의 얼굴이 싹 바뀌며, 마음이 변하던 중국이 간담이 서늘해 평양에 대해 존경심을 회복할지 모른다는 망상이었다.

그리고 이 결심은 지금까지 잘 써먹던 "중국과 통하고 남조선은 이용하는"(通中用南) 전략과의 일시적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망상 속에서 한반도의 평화니 남조선 당국이니 금강산이니 개성이니 하는 일들은 생각날까 말까한 변두리 사안이 된 것이다. 북한 공산당 간부들이 세계 언론에 대해 "우리는 한다면 합네다"라고 말하는 것을 TV 화면으로 보며 김정일은 쾌감과 작열감마저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노 대니얼 월간중앙 객원편집위원.정치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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