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확대,위험부담 크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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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승윤부총리가 밝힌 재정규모 확대구상은 일응 긍정적 측면이 없지 않다.
도로ㆍ항만 등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투자부진이 산업활동에 제약요인으로 작용,그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나아가 성장 장애요인으로까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경인고속도로나 경수 산업도로의 적체현상만 보아도 실감할 수 있다.
특히 우리도 과거와는 달리 인력이 모자라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만큼 한정된 인적자원의 생산성을 극대화,국제경쟁에 이기려면 산업의 고부가가식화,공장자동화에 의한 산업현장의 생산성 제고 못지않게 기업의 사회간접비용을 줄이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 만큼 정부가 재정규모를 늘려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것은 환영해야 할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같은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몇가지 이유때문에 이부총리의 구상에 찬표를 던지는 일을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역시 재정규모 팽창에 따르는 물가불안이다. 이부총리는 재정규모가 늘더라도 세입ㆍ세출이 균형을 유지하면 재정은 물가 중립적이 될 것이란 이론을 펴고 있으나 이같은 주장이야말로 학자들이 강의실에서나 할 얘기다.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택건설 촉진에 따른 자재부족과 인력난,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물가상승은 재정이 통화흡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도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다. 앞으로도 주택건설은 계속해야 하고 더욱이 정부의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중과방침으로 민간부문의 건설붐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 확실한 마당에 정부의 다른 공공사업마저 크게 확대된다면 과연 물가가 가만히 있을 것인지 묻고 싶다.
지금 우리 경제는 수출이 어려운 가운데도 내수에 의해 상반기에 이미 9ㆍ8%의 성장을 기록했다. 여기에 재정투자까지 확대되는 경우 그 여파는 물가상승에 그치지 않고 산업구조ㆍ인력수급 등 우리 경제 전반에 미칠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대한 충분한 검토가 끝났는지도 궁금하다.
또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재정규모의 확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부기능의 확대를 가져올 것인데 국가경영의 관점에서 그것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우리는 행정개혁위원회의 권고가 정부에 의해 기구의 합리적 조정이 아닌 확대 일변도의 결과를 가져온 것을 지켜봐 왔다. 한번 늘어난 정부 인력과 기구는 결코 축소되는 일 없이 계속 남아 행정의 비능률과 국민부담의 가중을 초래하고 있다. 사회간접시설의 확충도 좋지만 그에 필요한 재원을 증세에 의한 재정규모 확대로 안이하게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기구축소등 경비절감에 의해 충당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경영의 합리화는 기업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부도 필요하다는 것을 차제에 강조하고자 한다.
이부총리의 구상에서 또하나 석연치 않은 점은 왜 하필 92년의 총선을 앞둔 91년 예산부터 사회간접시설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느냐는 점이다.
우리는 이부총리의 구상이 정치적 동기에서 나왔다고는 보지 않지만 지금까지 정부나 정치권의 행태로 보아 그같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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