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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우크라이나공­영국/29조천억불 “금괴 줄다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270년전 영 은행에 보관… 반환 요청/맡긴 장교 유언장 제시 “돌려달라”/영선 의문 제기하며 장부찾기 나서
소련 우크라이나지역 지도자가 수백년전 영국은행에 맡겨둔 금괴를 현시가로 따져 그동안의 이자와 함께 돌려달라고 최근 소련의 우크라이나공화국의회 의원들이 영국중앙은행인 영란은행에 요구하고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앞으로 그 처리가 어떻게 될지 주목된다.
23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지가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소련내 15개 구성공화국 가운데 하나인 우크라이나공화국 의원들은 지금부터 2백70년전 우크라이나지방의 군사지도자였던 파벨 폴루보토크대령이 당시 사설은행이었던 영란은행에 금괴 한짝을 맡겨놓았다고 주장하면서 지난 21일 영란은행앞으로 금괴와 그동안의 이자에 대한 반환요구서를 보내왔다.
우크라이나공화국 의원들은 이 요구서와 함께 그 증거자료로 폴루보토크대령이 당시 러시아의 표트르대제에게 붙잡혀 감옥에서 죽기직전 남긴 유언장을 제시하고 있는데,이 유언장에는 그가 영란은행에 예치한 금괴를 『주권을 가진 우크라이나독립국에 물려준다』고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련내 각 공화국의 독립움직임이 강하게 일면서 최근 우크라이나공화국 의회가 주권을 선언한 만큼 이제 우크라이나공화국은 당당한 독립주권의 자격으로 폴루보토크대령이 남긴 유산을 상속할 권리를 갖게 됐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금괴속의 금을 현시가로 따지고 거기에 그동안의 이자를 합하면 영국측으로부터 돌려받을 돈이 무려 16조파운드 (29조1천2백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6년치 국민총생산과 맞먹는 천문학적 액수로 우크라이나공화국 국민 1인당 약 30만파운드(54만6천달러)씩 돌아가 공화국국민전체를 당장에 갑부로 만들 수 있는 엄청난 돈이다.
뜻밖의 엄청난 요구에 접한 영란은행관계자들은 일단 엄청난 요구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23일 은행 지하창고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수백년 묶은 거래원장을 찾아내는 일에 착수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지는 보도했다.
영란은행측은 우크라이나공화국의 요구와 관련,두가지점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선 지금의 우크라이나 공화국을 폴루보토크대령이 유언장에 명기한 「독립주권국」으로 볼 수 있느냐는 점으로,이는 영국정부가 우크라이나공화국을 독립주권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상 유언장을 근거로한 그들의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 하나는 반환액수의 문제로 금괴 한짝에 든 금은 현시가로 따져봐야 사실상 얼마안되고 문제는 2백70년간의 이자다. 이는 당시 금을 맡긴 폴루보토크대령의 거래구좌개설여부에 결정적으로 달려있다.
즉 구좌개설과 함께 금괴를 예치시켰을 경우에는 당연히 이자를 지급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단순히 금괴보관만을 의뢰했을 경우 다시 그 금괴만 되돌려 주면된다.
23일 시작된 영란은행의 지하창고수색작업은 당시 그가 단순히 금괴보관만을 의뢰했다는 증거서류를 찾아내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수백년이나 지난 문서인데다 그후 영란은행이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과연 당시 거래장부를 찾아낼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지는 보도하고 있다.
특히 영국이 우크라이나의 주권선언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그동안 발트해 3국문제에 있어 그들의 주권 및 독립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온 영국정부의 입장과는 배치되는 것이어서 영국의 대소외교에 큰 혼선을 빚을 가능성도 있어 금괴반환청구사건의 처리결과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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