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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 원혼 위로에 "혼신의 힘"|「또 하나의 문화」주최 한풀이 굿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불쌍하다, 원혼들 배도 고프고 한도 많아/이승의 정성 받고 만신의 힘을 빌려/산천의 한을 풀고 마음의 문도 열어/저승엘 랑 가셔서 연지 찍고 곤지 찍고 아들딸도 낳으시고….』
지난 14일 오후5시 비가 내리는 서울 도봉산기슭 아카데미하우스 새벽의 집에서 때 아니게 흐드러진 굿판이 벌어졌다.
여성단체「또 하나의 문화」는 일제하 억눌린 역사의 희생물로 원통하게 죽어 간 여자정신대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정신대 해원굿」을 마련했다.
여자정신대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전쟁에 참가한 일본군대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우리나라 여성들을 징발해 일본군의 1회용 성적대상물로 삼은 우리의 원통한 여성들이다.
「오키나와에서 죽은 귀신」「사이판에서 죽은 귀신」「전라도에서 간 처녀」「경상도에서 간 처녀」…. 울긋불긋 늘어선 만장과 떡·과일·고기·전 등 갖가지 음식을 차려 놓고 9명의 무당들이 이처럼 굿을 벌였고 정신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1백50여명의 남녀가 몰려들어 둘러앉았다.
이 굿을 준비한 회원중의 하나인 조혜정 교수(연세대·인류학)의 취지설명이 있은 후 신이 세고 우렁차기로 유명한 황해도 만신 유옥선·박선옥씨(인천민속문화보존 회 회원)등의 애절하고도 정성어린「신내림」몸짓이 시작됐다.
도봉산 선왕들도 함께와 정신대의 원을 물어 달라고 비는「산 거리」로부터「칠성거리」 「타살거리」등 12거리의 혼신 굿이 연이어 펼쳐졌다.
신이 내린 무당이 상처와 억압과 수모로 만신창이가 된 정신대의 고통을 풀 길이 없어 끙끙 앓다 혼절하는 순간에서 굿은 절정에 이르렀다. 굿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 동안의 무관심을 용서해 달라고 두 손 모아 빌었다.
정신대문제를 갖고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재일 동포 산하영애씨(31·여)는 이 굿을 보면서『지난번 노태우 대통령의 방일 때 한국여성단체연합과 교회여성연합회 등 이 기자회견을 갖고 정신대에 관한 일본정부의 진상구명과 사죄·보상을 요구한 것이 정신대문제를 사회여론화 한 최초의 움직임이었습니다. 정확한 숫자도 밝혀지지 않은 채 5만∼20만 명으로 추산되는 엄청난 수의 여성이 죽어 간 이 사건이 역사 속에서 밝혀지고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를 꼭 받아 내야만 합니다』라고 말했다. <문경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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