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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무관심(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왜 우리나라 정치가 이 모양,이 꼴인지,정치인들은 그 이유나 제대로 아는가. 영국의 정치학자 E H 카는 대중민주주의 내면을 이렇게 분석한 일이 있었다.
민주정치는 「흥정」의 산물이다. 그 흥정의 주체는 정치조직,다른 말로 하면 정당이다. 정치조직의 지도자들이 의견을 내고 흥정을 해서 합의를 보고,마지막 정책 결정을 내린다. 국민들은 뒷전에 앉아 구경이나 한다.
정치지도자들은 나중에 국민을 설득하는 일에 나선다. 이때 설득을 잘 하는 정치인은 유능한 지도자이고,설득을 못하면 낙제감이다. E H 카는 정치적 결정을 국민에게 「팔아 넘기는」 것을 대중민주주의 실체로 보았다.
우리나라 정치는 바로 이 대목에서 문제가 있다. 국민의 의사에 배반하는 정치가 문제가 아니고,국민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정치가 문제인 것이다.
이번 임시국회의 「날치기」 작태를 본 국민들은 시원하다는 사람이 별로 없다. 여당도 싫고,야당도 싫다는 쪽이 지배적이다.
그 결과는 두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이러다가 우리 사회가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의 고조이고,다른 하나는 정치야 모로 가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라는 정치무관심 현상이다.
국민의 위기의식이 높아지면 불안감에 사로잡혀 군중심리의 유혹을 받는다. 그것은 광적인 공격심리로 나타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경우를 최근 동유럽에서 똑똑히 보았다.
정치무관심도 걱정스러운 현상이다. 학자들은 그것을 「탈정치적」 「무정치적」 「반정치적」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소신대로 정치가 되지 않는데 그까짓 정치에 관심은 가져 뭘해 하는 태도가 「탈정치적」 현상이다. 「무정치적」 태도는 정치는 내 알 바 아니고,향략에나 정신을 쏟는 경우다. 「반정치적」 태도는 무정부주의자의 경우다.
국민들이 이처럼 정치에서 눈을 돌리면 정치인들은 좋아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제2공화국때 정치무관심의 결과를 보았다. 국민의 파탄을 불러들이는 것은 물론 정치인들의 묘를 파게 하는 것이 바로 정치무관심이다.
우리 정치를 지금 이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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