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오순도순「품앗이」로 이웃정 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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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웃도 모르고 삭막하게 지내는 도시 아파트의 주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동생활의식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핵가족화가 심화되고 주부들의 대외활동이 다양해지며 부부동반 모임 등이 늘어나면서 비정규적인 일손의 도움이 필요하게되자 크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들 주부들은 이웃간의 정을 나눌 수 있고 시간과 노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품앗이 형태」의 도움과 봉사를 서로간에 해주고있다.
이 같은 시도는 특히 의식이 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젊은 중산층 주부들간에 활발하다.
이들에게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시멘트벽과 철문으로 구분 지어진 단절의 세계가 아니라 복도와 엘리베이터로 손쉽게 이어지는 공동생활의 터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서울 서초구 반포3동 부녀회가 8년 동안 계속하고 있는 신반포 주부대학이 그 좋은 예. 서초구 부녀회장 강옥성씨(50)는『당초 아파트지역 주민들이 바로 이웃집에 살면서 서로를 몰라 정을 나누기는 고사하고 공동생활에서 오는 사소한 불편으로 언쟁이 잦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주부대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웃간의 예절과 사랑에서부터 자녀교육문제·건강·가정법률문제에 이르기까지 이웃주부들이 함께 배우고 정을 나누면서 이제는 서로 상의하고 돕는 가까운 이웃이 됐다는 것.
그동안 이들 중 일부주부들은 요일마다 조를 짜서 저녁시간이후 아파트의 후미진 곳, 지하도부근 등을 함께 돌며 아파트 청소년들의 안전과 비행예방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또 날짜를 잡아 아파트 앞마당 등에 안 쓰는 물건 바꾸기 광장을 마련해 서로 필요한 물건을 바꿔 쓰기도 하고 일부는 불우이웃에 전달하는 등 서로 돕는 공동생활의식을 이끌어왔다는 것이다.
인천 신세계아파트의 경우 서울을 준 생활권으로 하고 있는 일부 주부들이 결혼식참가·쇼핑·부부모임 등 서울에서의 볼일이 있을 경우 돌아가면서 어느 한집의 어머니가 점심을 챙겨주는 등 아이들을 맡아 돌봐주고 필요하면 숙제지도를 해준다.
이곳에 사는 주부 박영희씨(39)는『혼자 아이들을 돌봐야 할 때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며『한나절이 걸리는 일도 별 초조함 없이 끝낼 수 있고 아이들도 이웃 친구들과 어울려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서울 암사동 시영아파트의 이영선씨(34)는『계단이나 복도청소를 할 때 같은 동의 주부들이 모두 나와 5층에서부터 물을 쏟아 붓고 그 물을 아래층으로 밀어 내리면서 함께 청소하면 효율적이고 일이 끝난 후 같이 점심식사를 하고 코피를 마시면 잠시 외로움도 잊고 이웃간에 화목해져 도움이 될 때가 많다』고 말했다.
E여고와 E여대를 졸업한 박순옥씨(37·반포동)는『아파트에는 생활수준과 연령이 비슷한 또래들이 살게되다 보니 자연 동창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며『아파트 내 동창생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식사도 같이 하고 보람있는 일을 위해 조금씩 돈을 거둬 불우이웃을 돕는데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올 여름부터 각자의 대학 전공을 살려 동창들의 자녀들을 함께 모아 글짓기·미술지도 등을 번갈아 할 예정이다.<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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