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12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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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 남로당 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정초 초대받은 집에 경찰이…/찬장에 숨어 체포 모면… 이재웅은 나 대신 잡혀가
49년 섣달 그믐날이었다. 하부 조직원들에게 구해온 돈을 조금씩 나누어주고 나니 마음이 뿌듯했다. 그러고는 정태식 아지트에서 채항석ㆍ장병민부부와 같이 처음으로 술한잔을 나누어 먹고 나의 아지트로 돌아왔다.
아지트에 돌아와보니 너무나 쓸쓸하고 서글펐다. 아지트에서 밥을 해주는 할머니는 개성출신의 노동자 작가 이한승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나의 비서겸 연락원은 그의 딸이었다. 이한승의 어머니를 나의 어머니라하고 그의 딸을 나의 누이동생으로 한가족처럼 가장해 살고 있었다.
이한승은 교도소에 들어가 있었다. 섣달 그믐날이 되니 그의 어머니와 딸은 아들과 아버지를 생각하여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나의 안전을 위해 교도소에 가서 차입도 면회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들을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 홀로 방에 드러누워 천장만 쳐다보며 가슴만 앓았다.
초이튿날 이었다. 정태식의 연락원이며 나의 대학 후배인 이재웅이나를 위로해주는 마음으로 그날밤 자기집에 식사를 초대해 주었다. 나는 그의 우정이 고마워서 그의 초청에 응하기로 했다.
날이 저물어서 약속대로 그의 집에 가 2층 끝방의 유리창을 쳐다봤다. 램프불이 켜져 있었다. 그것이 안전신호였다. 그의 집은 채항석 집보다 더 큰 2층 양옥이었다.
현관에 들어서니 아래층 그의 부친방에는 많은 초청객으로 이미 술잔치가 시작되어 있었다. 담소하는 소리가 바깥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이는 나를 반가이 2층방으로 안내했다.
그는 상사인 내가 자기집을 찾아준데 대해 기뻐하며 술상을 가지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계단을 황급히 뛰어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가 눈이 둥그레가지고 『큰일 났어요. 포위당했어요. 체포하러 와요』하며 울먹거리는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나도 모르게 일어서 뒷창문을 열고 지붕위로 뛰어 오르려고 했지만 지붕처마위에 손이 닿지 않았다.
그때 이가 『선생님은 우리 누이방으로 들어가서 자형친구라 하세요. 저는 잡혀 가겠어요』하며 나를 아래층 자기누이 방으로 밀어넣고는 문을 닫는 것이었다.
방안에 밀려 들어가보니 그의 누이 부부가 겸상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부부의 얼굴도 새파래졌다.
그의 자형은 경기도 보건소에 다니는 공무원 신분의 의사였다.
그때 수사관들이 문을 차부수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이재웅이요』하며 이가 나를 구해보려고 자진해 나서며 수갑을 받는것 같았다.
동시에 이재웅의 어머님의 통곡하는 울음소리가 터져나와 온집안이 별안간 왈칵 뒤집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의 누이부부 얼굴을 그대로 쳐다보고 그자리에 앉아있을수가 없었다. 나는 그방을 뛰어 나왔다.
나는 엉겹결에 부엌으로 뛰어들어 갔다.
부엌에는 큰 독이 있어 그안에 들어가 숨었으나 생각해보니 수사원들이 부엌에 들어오면 반드시 독 속을 들여다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독에서 나왔다.
그러나 숨을 곳을 아무리 찾아봐도 얼른 적당한 곳이 보이지 않았는데 수도 꼭지 밑의 물 받는곳에 씻을 사발그릇이 놓여있고 그밑이 궤짝처럼 되어 있었다. 문을 열어보니 설날이라 그안에 있던 그릇을 다 꺼내 비어 있었다.
그 속에 들어가 숨고 속에서 문을 닫았다. 조금 있으니 과연 수사기관원들이 부엌에 들어와서 독뚜껑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전에 네번이나 위급한 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탈출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밤은 이재웅이 이미 체포당했고 그가 나의 당내 지위를 알고 있으니 더 우려하지 않을수 없었다. 수사요원들은 사람이 들어가지도 못할 작은 도가니 속까지 다 들여다보면서도 바로 자기들 눈밑에 숨어있는 나를 찾아내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이튿날 나는 이화여대에 다니는 이의 누이동생에게 이의 구출자금으로 20만원을 건네 주었다.
1월2일밤 신당동 이재웅의 집에서 내가 탈출할 무렵 이주하가 이북에 갔다가 장충동 아지트에 도착했다. 이주하는 평양에가서 박헌영으로부터 두가지 중대한 지시를 받아왔다.
그 하나는 50년 5월에 있을 제2회 총선에 남로당이 프락치를 입후보시킬것,둘째로 남조선인민이 어떠한 통일방식을 바라고 있는가를 3월말까지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두번째 지시는 우리블록 담당사항이었으나 우리에게 전달되어온 것은약간 시간이 지나서였다. 정초에는 김삼룡과 정태식과의 접선 예정이 없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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