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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다음 타깃은 누굴까" 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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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재계가 정치자금 소용돌이와 리더십 실종의 동반 악재를 맞아 속앓이를 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한 임원은 "가뜩이나 경기가 침체된 가운데 경제 외적인 불안까지 겹쳐 1990년대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10년'꼴을 재현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비자금 뇌관=요즘 재계 인사들은 모이면 화제로 올리는 게 '다음은 누구 차례냐'다. 재계 3위 SK의 1백억원 비자금 사건이 불거진 데 이어 한나라당이 모금 대상 기업체 리스트를 작성해 놓고 대선 자금을 거뒀을지 모른다는 정황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단서가 잡히면 성역없이 수사하겠다고 밝혀 왔다. 여기에 '아니면 말고'식의 정치권 폭로전까지 이어져 재계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 재계 인사는 "정치권의 검은돈 관행 속에서 '나는 깨끗하다'고 나설 수 있는 대기업이 과연 몇 군데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재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음성적 정치자금이 잘못된 제도와 과거 정경유착의 풍토에서 비롯된 면이 큰 만큼 재계와 정치권이 함께 고해성사를 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때"라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하지만 경중을 가리지 않고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는 정서도 만만찮아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표류하는 전경련=SK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손길승(SK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의 집무 공백이 한달 가까이 지속됐다. 비자금 파문이 깊어지고 있는데도 전경련은 올 초처럼 '정치자금을 내지 않겠다'는 과감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매달 열리는 전경련 회장단 회의가 성원이 안돼 수 주일째 공전한 것도 유례가 없다.

孫회장이 조만간 물러나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힌 가운데 후임 회장을 누가 맡을지도 아직은 불투명하다.

전경련의 현명관 상근부회장은 "어려운 때일수록 정면돌파를 해야 하며, 그러려면 대그룹 회장이 후임 회장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LG.현대자동차 등 주요 그룹은 모두 차기 회장직을 맡기를 꺼려 전경련으로선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전경련을 미국 헤리티지 재단 같은 단체로 탈바꿈시키자는 논의까지 나오고 있다. 전경련은 일단 오는 29일, 30일 원로자문회의와 비공식 회장단 회의를 잇따라 열어 후임 회장 추대 문제를 논의키로 했다.

◇일본형 불황 우려=고임금과 부동산 거품 등으로 1990년대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을 답습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국 경제를 시발로 세계 경제 회복기미가 엿보이는데도 한국만 유독 경쟁국 가운데 올해 2%대 저성장이 예상된다. 경기 호전의 흐름을 타지 못하는 사이에 그 과실을 중국 등지에 빼앗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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