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직 우대하는 사회풍토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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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7일 발표된 제조업부문의 인력난 타개방안은 근로자들의 생산직 기피현상이 산업현장의 심각한 제약요인으로 대두된 지 한참이나 지나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해외인력의 수입문제까지 거론되는 단계에서 겨우 나왔다는 점에서 때늦은 감이 크다.
뒤늦게라도 정부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했다는 것은 평가받아야 하겠지만 이번 대책이 그대로 실현된다 해도 95년이 지나야 겨우 생산직 근로자의 수급균형이 이루어지리라는 정부 스스로의 분석은 정부의 대응이 얼마나 때늦은 것인가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번 발표된 대책이 제대로 시행되어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데에 있다.
이번 대책에는 정부가 고심한 흔적이 적지않게 보이고 괄목할 대목들도 없지않다. 예컨대 공업고등학교를 크게 늘리고 공고재학생들의 학자금을 면제한다든가 생산직 근로자에 대한 야간대ㆍ개방대 입학특전,장기근로자에 대한 주택공급 우선권 부여,지방ㆍ중소업체 근로자에 대한 병역특례 혜택 등은 근로자들의 생산직 이탈 혹은 기피현상을 막는 데 적지않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같은 몇가지 제도적 장치만으로 과연 기름묻은 옷을 기피하려는 근로자들의 의식이나 그같은 의식을 유발한 사회풍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겠느냐 하는 점이다.
우리가 보기에 생산직 기피,서비스업종 선호현상은 물론 서비스업종의 임금이 높다든가 일이 편하다는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큰 것이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기술직.생산직을 경시하는 사회풍조가 더 큰 요인이 아닌가 싶다.
산업사회를 지향하고 기술입국을 강조하면서도 장인을 천시하는 유교적 직업관과 이에 편향된 교육제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의식이나 그같은 풍토위에서 이 사회의 지도계층으로 성장한 정치인ㆍ공무원ㆍ기업인들의 인식과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생산직 기피현상은 쉽게 고쳐지기 어렵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81년부터 89년까지 인문계 고교는 3백4개나 늘리면서 공업고등학교는 4개밖에 증설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나 정부의 인력정책심의위원회가 85년이래 한차례도 열리지 않다가 이번에 처음 열렸다는 것은 산업인력에 대한 정부관계자들의 인식부족과 무관심이 어느 정도임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같은 사정을 감안할 때 이번 경제기획원이 내놓은 대책이 구체적인 실행단계에서 과연 얼마나 순조롭게 관계부처들에 의해 수용되고 꾸준히 이행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그리고 문제의 핵심이 제도적 개선뿐 아니라 국민의 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이같은 인식을 바꾸는 노력,예컨대 초급교육과정에서부터 근로의욕을 높이고 생산과 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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