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참을 수 없는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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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지만 진부한 결말, 이를 위해 남발되는 우연. '참을 수 없는 사랑(Intolerable Cruelty)'은 할리우드식 로맨틱 코미디에 이런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다. 각본과 연출을 코언 형제가 맡았다는 데서 벌써 예사롭지 않은 냄새가 풍긴다. 코언 형제가 누군가. 할리우드의 장르적 전통을 쫓아가면서도 이를 살짝 비트는 데 도가 튼 사람들 아닌가.

'참을 수 없는 사랑'은 이를테면 남들 모르게 슬쩍 슬쩍 딴 짓을 하면서도 남들 보기에 모범생 범주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 영리한 학생같다. 이 영화에 우여곡절을 거쳐 사랑의 결실을 맺는 남녀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코언 형제는 남녀 주인공이 탁구를 치듯 설전을 벌이는 스크루볼 코미디의 틀을 지키되 독창성을 불어넣는다. 주연 조지 클루니와 캐서린 제타 존스 사이를 오가는 대화는 고수들의 일합(一合)처럼 아슬아슬한 재기가 넘치고 이들이 구축하는 캐릭터는 뻔하지 않다.

마일즈(조지 클루니)는 이혼 전문 변호사다. 이 방면 최고다. 그가 작성한 혼전 서약(경제적으로 월등한 배우자에게서 이혼 후 어떤 이득도 보지 않겠다는 서약)은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

마릴린(캐서린 제타 존스)은 돈 많고 머리 빈 '봉'을 찍어 결혼한 다음 이혼 위자료를 챙기는 여자다. 역시 이 방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프로다. 그런데 바람둥이 부동산업자 남편과 헤어지려는 마릴린의 계략이 마일즈 때문에 무산된다.

그런데 마릴린은 위자료 한푼 못 받고도 기죽은 기색 없이 석유 재벌 하워드(빌리 밥 손튼)를 데리고 나타난다. 그 놈의 사랑이 죄라더니, 마일즈는 마릴린의 매력에 빠져 허우적대기 시작한다. 하워드와 성공적인 이혼을 하도록 도와준 그는 급기야 이 여자와 결혼식까지 올린다.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다운 결말만 빼고는 예측을 불허한다. 두 사람의 결혼식 이후 영화는 전혀 엉뚱하게 치닫는다. 영화 보는 재미를 위해 샅샅이 밝힐 수는 없지만, 마릴린의 머리 굴리기에서 한번 놀라고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 마일즈의 돌발적인 행동에 두번 놀란다.

이 속고 속이는 돈과 사랑의 게임에서 벌어지는 두 남녀의 성(性)대결은 말 그대로 불꽃을 튀긴다. 서로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은 같지만 '장미의 전쟁'이 물리적 싸움으로 끔찍한 파국을 맞는 부부의 이야기였다면, '참을 수 없는 사랑'은 몸보다는 머리와 말로 우아하고 세련된 심리전을 보여준다.

클루니는 틈만 나면 치아를 거울에 비춰보고 매무시를 가다듬는 식의 매너를 통해 닳고 닳은 민완 변호사를 충실히 표현한다. 그가 영화 전반에 구축한 권태로운 이미지는 뜻밖에 다가온 사랑이라는 순수한 가치에 왈칵 정신을 잃고 마는 의외성을 충분히 설명해주고도 남는다.

'결혼=비즈니스'라는 얘기를 하는데 제타 존스만큼 잘 어울리는 여배우가 있을까. 부단한 머리 굴리기를 통해 목표를 달성하는 집념과 키우는 푸들에게 전 남편 이름을 붙일 정도의 냉혹함, 그러나 결국 진심 앞에 무릎을 꿇는 여성스러움까지 모든 것이 연기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럽다.

이 영화를 보고 두 배우 중 누가 더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실로 어렵다. 다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배역을 골랐다고. 3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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