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정상 탈 냉전 딜레마/배명복 파리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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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상이 처음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것이 두가지 있다. 푸른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무용이 그것이다.』
5일 런던시내 랭카스터하우스에서 개막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에서 대처 영국총리가 인용한 귀절이다.
대처총리는 『바르바로사』라는 책의 서문을 인용하면서 『인간의 무용이 전쟁을 위해서가 아니라 평화를 위해 사용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이 자리에 모인 우리의 과업』이라고 말을 맺었다.
달라진 환경에 맞추어 집을 고쳐지을 수는 있지만 그 초석까지 건드리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이번 회담에 참석한 16개국 정상들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해체와 함께 나토도 해체되어야 한다고 고르바초프는 주장하고 있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나토는 존속해야 한다.
전쟁억제를 위해 핵무기도 계속 보유돼야 하며 유럽내 미군도 계속 주둔해야 한다.
다만 나토가 군사적 위협요인이 아니라 안정요인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핵무기는 최후의 수단으로서만 사용할 것이며,배치된 병력이나 무기ㆍ핵탄두 등은 계속 줄여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이같은 나토회원국 정상들의 공통된 입장에 대해 당대회로 여념이 없는 고르바초프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냉전은 끝났다』고 「엄중한 선언」을 한 작년말 몰타에서의 부시ㆍ고르바초프회담에도 불구하고 양대강국의 첨예한 대립은 그치지 않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엄존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동ㆍ서 유럽 각국은 물론 온 지구촌가족들은 냉전의 종식과 그에따른 세계의 평화에 대한 기대때문에 이번 나토정상회담의 진행과 결과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회담 개막일인 5일 오전 때마침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회담장 주변의 그린파크에 모인 수백명의 런던시민들이 「나토없는 유럽」 「원폭없는 유럽」을 외치며 삼엄한 경비를 펴고있는 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인 것이 무너진 기대에 대한 항의로 비친 것은 기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 같다.<런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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