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내 고향의 봄·여름·가을·겨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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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교회 없는 마을
조재영 글·그림, 열림원, 164쪽, 7800원

"읍내에 있는 교회 꼭대기에 왕별이 반짝이고 창밖으로 크리스마스트리 전구 불빛이 노랗게 새어나오면 우리는 쭈뼛쭈뼛하면서 교회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만큼은 산타할아버지가 모두에게 선물을 주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토박이 아이들은 우리를 달갑지 않게 여기며 눈을 부라렸지만 우리는 선물을 받을 때까지는 모른 척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엇 하나 넉넉지 못했던 그 시절,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나누어 받을 수 있다는 믿음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위안을 받기에 충분했다"

충청도 산골짜기의, 교회도 없는 복탄리란 마을에 살던 어린 시절을 그린 이 글은 독서가 아니라 완상의 대상이다. 대보름 쥐불놀이, 천렵 가서 주전자에 끓이던 매운탕, 행여 중학교 입학금이 사라질까 누렁이 소를 애지중지 돌보던 친구, 처음 자전거를 얻어 타고 씽씽 달려본 미루나무 길…. '꽃비처럼 쏟아지는 봄 이야기' 등 사계절따라 고향 이야기를 엮은 46편의 글 하나 하나가 어른들에겐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청소년들에겐 재미와 감동을 전한다. 여기에 수묵화 기법으로 표현된 동심의 세계는 푸근하면서도 아련한 공감을 더해준다.

각박하고 남루한 세상사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 '어른들까지 위한 그림책'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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