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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넘치는 이런 집주인도 있다/집없는 이웃에 “무료셋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두 가구 집사 「성공적 분가」/“더불어 사는 재미 돈으로 바꿀수 없죠”/예비역 중장 김종수씨 부부 8년 선행
『어리석게 보일지 모르지만 남을 돕는 일이 결국 자신을 돕는 일이지요. 돈몇푼 더 받겠다고 세입자를 거리로 내쫓는 집주인의 마음인들 떳떳하고 편하겠습니까. 한평생 살면 얼마나 산다고….』
수산청장을 지낸 예비역중장 김종수씨(65ㆍ서울 성산1동 40)와 부인 신금자씨(61).
동네에서 「마음씨 좋은 장군부부」로 통하는 이들은 8년전인 82년부터 창고를 개조한 반지하방 3칸(6평 1개,4평 2개)를 아무런 대가없이 무주택 이웃에게 빌려주어 함께 살고있다.
대지 1백20평에 지상2층ㆍ지하1층의 양옥. 전세로 내놓으면 3천만원은 족히 받는다고들 하지만 함께 담도 고치고 앞뜰 채소밭에 가지ㆍ배추ㆍ오이를 심어 나누어 먹는,그야말로 더불어 사는 재미를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김씨 부부의 지론.
김씨부부는 2남2녀의 자녀중 장남 병대씨(34),장녀가 잇따라 출가한뒤 갑자기 주위가 텅빈듯한 허전함을 대신할 길을 찾던 중 이같이 인간미 넘치는 착상을 해냈다.
『친지들에게 부탁해 살집이 없어 애태우는 사람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어요.』
맨처음 김씨부부와 한지붕아래 살게된 이모씨(당시 아파트경비원)는 3년간을 한집안 식구처럼 지내다 18평짜리 아파트를 장만해 성공적으로 「분가」해 나갔다.
뒤이어 새로운 식구가 된 한모씨 가족은 무려 4년간을 함께 살다 6월초 역시 20평짜리 연립주택을 구입해 이사했다.
6월17일부터 이모씨(52ㆍ버스운전사) 일가족 5명이 새로운 가족이 됐다.
이씨는 이곳으로 오기전 동숭동에서 5년간 살았으나 집주인이 전세값파동이후 7백만원하던 보증금을 크게 올려달라고 해 부인ㆍ3형제 등 다석식구가 졸지에 거리로 나앉을 형편이었다.
우연히 친지의 소개로 알게된 이씨부부의 제의는 그야말로 구세주의 출현이나 진배없었다.
남들이 쉽게 생각할수 없는 일을 김씨부부가 주저없이 실천해 옮길수 있었던 것은 오랜 군생활동안 겪은 숱한 고생과 경험으로 체득한 동료애 때문이었다.
경남 김해태생으로 육사3기출신인 김씨는 6ㆍ25발발 2년전인 48년 소위로 임관,같은해 신씨와 결혼했으나 50년 압록강전투에 6사단 7연대 2대대장으로 참전,포로로 잡혀 3년간 북한에 억류됐다.
신혼의 단꿈에서 채 깨기도 전 부인 신씨에게는 남편의 전사통지서가 날아왔고 설상가상으로 친정인 경기도 안성군에 있던 부모가 동생 5명을 남긴채 폭격으로 한꺼번에 세상을 떴다.
『남편과 부모를 모두 잃고 친정동생 5명과 함께 그 어려운 피난시절을 겪으면서 세상은 좋은 이웃없이 살아갈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죽은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휴전후 포로교환때 살아 돌아왔지만 신씨는 줄곧 전방에서 야전군지휘관으로만 근무한 남편을 따라 이번에는 가는곳마다 수십명씩의 「식객」에 시달려야 했다.
김씨는 2군사령관으로 재임하던 79년 9월26일 중장으로 예편,수산청장으로 발령받아 3년10개월간 재직한뒤 이후 일체의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연금으로만 생활하며 등산ㆍ독서로 소일하고 있다.
유명한 충주 무극리전투에서 1개소대를 이끌고 적 1개연대를 섬멸,영화 『전쟁과 여교사』의 실제 주인공이기도했던 김씨.
군시절 후배들에게 「호랑이장군」으로 통했던 그는 이제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않고 고생하는 이웃과 따스한 체온을 나누는 인정많은 아저씨가 된데대해 크게 만족해 하고 있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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