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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취재일기

PSI 뒤죽박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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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2일 아침 국회 귀빈식당에 윤광웅 국방부 장관, 이종석 통일부 장관, 유명환 외교부 제1차관이 김근태 당의장 앞에 앉았다. 당의 '북핵 대책특위'에 불려온 것이다.

김 의장은 "미국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확대 참여하겠다는 방침이 정부 당국자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뒤 "이번 사안에 대해 불성실하고 안일한 모습을 보이는 공직자가 있다면 합당한 책임을 추궁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틀 전 국회에서 "PSI에 부분적 또는 사안별로 참여하려 한다"며 PSI 참여 확대 방침을 시사했던 유 차관은 코앞에서 면박을 당했다. 유 차관은 당혹감을 감추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김 의장은 전날에도 "우리 정부는 미국이 추진하는 PSI에 참여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외교부는 11일 오후까지도 PSI 참여 폭을 넓히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잡았다. 당국자가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 밤 늦게 "PSI 정식 참여 문제는 면밀 검토 중에 있다"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청와대는 12일 이와 관련해 "유엔 안보리 결의가 정부 방침의 준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의 입장도 그에 맞춰 다시 정리됐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란 때는 청와대.정부.열린우리당이 한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당.정.청이 제각각이다. 통일부와 외교부가 국회 답변에서 다른 입장을 보이기도 했었다. 여권 안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문제는 PSI는 원하든 아니든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9.11 테러 뒤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대량살상무기가 '불량국가'나 테러단체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테러단체에 팔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유엔 안보리에 미국이 낸 제재안의 핵심은 대량살상무기의 개발과 이전의 차단이다. 따라서 미국은 동맹국인 우리에게 PSI 동참을 요구할 게 불 보듯 훤하다. 또한 유엔 안보리의 결의가 통과되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이전의 차단에 대한 의무가 회원국에 자동적으로 부과돼 사실상 정부는 PSI와 같은 활동을 해야 한다.

이라크 파병, 직도사격장 건설, 미군 기지 이전 부지 마련…. 안보의 중대 사안들이었는데 이런저런 눈치를 보며 미적거리다 결국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 PSI 문제도 그런 쪽으로 가는 듯하다. 북한 핵실험 발표 뒤 안보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지만 정부의 대응방식은 달라진 게 없다.

이상언 정치부문 기자

◆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육상.해상.공중에서 핵.생물화학 무기, 미사일과 이와 관련된 물자를 수송하는 선박.차량.항공기를 검문검색을 통해 차단하는 다국적 작전체계. 미국이 북한을 겨냥해 2003년 만들었다. 미국은 한국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줄 것을 줄곧 요청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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