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금융시장 '고위험 채권'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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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무엇보다 장기 저금리로 자금사정이 풍부해진 우량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리스크가 큰 고수익-고위험 회사채의 발행물량은 크게 늘어 시장 전체에서 AAA등급의 회사채가 차지하는 비율이 낮아진 것이다. 12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메릴린치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AAA등급의 회사채 비중은 1998년 15%에서 올해 8% 대로 떨어졌다. 투자자들이 수익성을 중시하면서 고위험-고수익 회사채를 인수하려는 경향이 확산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반면 우량기업들은 현금 보유를 늘리고 가급적 부채는 줄이고 있다.

특히 초우량 회사채를 주로 인수하던 생명보험사나 연기금들도 낮은 수익률에 만족하지 못하고 점차 파생상품이나 고위험 자산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추세다.

메릴린치는 "투자자들이 비우량채에도 잽싸게 달려들어 낚아채고 있는 게 시장 분위기"라며 "반면 AAA등급 회사채 발행은 역사적으로 볼 때 매우 적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신용평가 회사 무디스는 우량 회사채가 줄어들면서 미국 신용평가사들이 평가 기준을 완화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미국 내에서 AAA 등급을 받은 회사는 단 7개에 불과하며 여기에 거의 근접한 회사가 금융상품 보증업체인 MBIA와 스위스 식품업체 네슬레 정도다.

우량 회사채가 씨가 마르는 상황이 계속되면 시장 전체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메릴린치는 "전세계 기업들의 수익이 감소기에 접어든다면 투자자들은 다시 우량기업 회사채를 선호하게 될 것"이라며 "이때 우량채 부족으로 시장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도이체방크의 게리 젠킨스 신용부분 전략담당자는 "신용 사이클이 변했을 경우 우량채 공급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보다는 오히려 그 때에도 비우량채를 사줄 수 있는 투자자들이 충분한가가 더 문제"라며 비우량채 발행사에 대한 신용경색을 우려했다. 한편 영국의 신용평가회사 피치는 올 들어 투자자들 사이에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고수익을 좇으려는 경향이 일반화하면서 자금이 회사채에서 파생상품 등 고위험 자산으로 옮겨가는 현상도 나타났다고 밝혔다. 피치의 제임스 베터만 애널리스트는 "고수익 회사채 대신 신용디폴트스왑(CDS: 발행 채권이 부도날 경우를 대비해 보험처럼 사는 파생상품)과 같은 위험도가 높은 상품을 거래하는 투자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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