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떠도는 북핵에 대한 오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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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면 미국이 함부로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 통일이 되면 핵 보유 강국이 될 수 있으니 전화위복이 된다…'.

10일 한 네티즌이 민주노총 게시판에 올린 글의 일부다. 이 글을 작성한 네티즌은 "어떤 나라가 악랄한 경제 봉쇄와 선제공격 위협에 가만히 당하고만 있겠는가"라며 북한 핵실험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북한 핵실험을 지지하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네티즌이나 진보단체가 주장하는 '북핵(北核) 예찬론'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 성공'을 공식 발표한 직후 쏟아지고 있는 이 같은 북핵 지지성 글은 국제정세에 대한 오해와 무지에 근거해 안보 위기를 부추기는 위험한 주장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철없는 소리로 치부하기엔 제법 논리적인 틀을 갖춘 글도 많아 국제정세에 어두운 시민들이 현혹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 "북한이 우리에겐 핵무기 쓰지 않을 것?"='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는 9일 성명서를 통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결코 한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며 미국과의 문제 해결을 위해 개발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네티즌도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해도 남한을 조준하진 않을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더라도 기술 수준이 조악해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동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견해가 "지나치게 민족 개념에만 집착해 북한이 군사적 적대세력이란 점을 인식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서강대 김영수(정치외교학) 교수는 "핵은 서울과 같은 인구밀집 지역에는 매우 유용한 군사 무기"라며 "한반도에 돌발상황이 생길 경우 북한이 대남 협박용으로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10㏏짜리 핵탄두가 서울에서 터질 경우 62만 명이 즉사한다"며 "북한이 핵실험을 거듭할수록 파괴력도 급신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도 "북한이 핵을 보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은 만성적인 안보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며 "안보 불안이 경제 위기 등으로 이어질 경우 한국이 직접적인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단기적으로 볼 때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통해 가공할 수준의 핵무기를 개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홍 소장의 예상이다.

◆ "통일 되면 북한 핵은 우리 것?"=일각에선 통일을 가정하고 "북한의 핵 개발로 우리도 핵을 보유한 강대국이 된다"는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펼친다. 한 네티즌은 "미국 등 강대국들은 통일 한국이 핵 보유국이 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동국대 고유환(북한학) 교수는 "통일 이후 핵을 보유할 경우 인접 국가들과 핵 경쟁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강대국에 비해 경제적으로 열세인 우리로선 통일을 위해서라도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주변 강대국들이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핵 폐기를 요구하며 견제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북한이 핵을 가지면 미국이 쉽게 공격할 수 없으므로 한반도 평화 구축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은 핵 제거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것이므로 한반도 긴장은 오히려 강화된다"고 전망한다. 일부 진보단체에선 "핵 보유는 자주 국가의 당연한 권리로 북한의 핵 보유에 국제사회가 간섭할 권리가 없다"며 북한의 선전을 되풀이하기도 한다. 경남대 류길재(북한대학원) 교수는 "국제적인 역학 관계를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며 "'핵무기 비확산'이라는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있으므로 주권 행사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유화 정책이 대북관 왜곡=전문가들은 "정부가 다년간 햇볕.포용정책으로 대변되는 유화정책을 추진한 결과 국민의 대북관이 심각하게 왜곡돼 북핵에 대한 각종 오해가 빚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북한의 핵 보유가 한반도에 현실적인 위협인데도 이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관희 소장은 "정부가 적(敵)으로서의 북한을 정확히 알리지 않은 결과 국민의 안보 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정강현.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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