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 핵실험이 '작은 문제'라는 노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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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회견과 여야 대표 간담회 등에서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현 정부의 포용정책을 재검토할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노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을 "이런 작은 문제"로 지칭하거나 "포용정책이 핵실험을 가져왔다는 지적들은 여유를 갖고 인과관계를 따져봤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정책 전환이 불가피함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노 대통령의 어법이 늘 그래왔듯 이 와중에서도 이분법적 논쟁 식의 말장난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들게 만든다. 북한 핵실험이라는 엄청난 도전을 맞아 국민은 이 나라 최고의 리더십인 대통령으로부터 안보는 어떻게 되며, 경제는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지, 국민 각자는 어떤 마음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짐을 듣고 싶었다. 특히 '자주'와 전작권 문제 등 노 대통령 자신이 그렇게 주장했던 대북.대외정책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이나 일련의 간담회에서 대통령의 말과 태도는 "대통령이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는 이 정부가 이 지경에 와서까지도 아직 위기 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허탈감만 안겨 주었다.

북한의 핵실험은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에서 실시된 것이다. 이를 기화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 전체의 안보 균형이 근본적으로 깨질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것은 비록 우리가 경제력과 재래식 전력이 우위에 있다 해도, 미국의 안보공약이 있다 해도 핵무기로 인해 북한의 대남 도발 억지력을 현저히 약화시키는 결과를 빚을 것이 불 보듯 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즉각적으로 대북 제재를 논의하고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북한을 즉각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는데도 오히려 최대의 피해국인 한국 대통령이 가장 모호한 처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포용정책의 실패 여부를 따져보아야 한다니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북한은 이미 갈 길을 정했다. 우리의 포용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그렇다면 이후의 우리 정책은 무엇이 돼야 하는지를 밝혔어야 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어떻게 할 것인가. 북쪽이 결정적으로 우리의 목줄을 겨냥했는데도 아직도 대통령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느낌이다.

"이런 작은 문제"라는 표현은 더욱 문제다. 북한의 핵실험이 작은 문제라면 대통령에게 큰 문제는 무엇인가. 이것이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대통령의 발언인가. 대통령 말대로 "안보 불감증도 곤란하지만 지나친 안보 민감증도 곤란하다"는 생각이라면 '심각한 상황이지만 정부가 상황을 잘 관리할 테니 국민은 동요하지 말라'고 당부하든가 '위기상황이므로 단합해야 한다'고 호소하든가 하는 편이 국민을 보다 잘 안심시키는 방법이 아닐까.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안보 위기를 목전에 두고도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여전히 분명치 않다는 의구심을 낳을 뿐이다. 국가의 안위를 꿋꿋하게 책임지는 리더십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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